라이언 “트럼프 지원유세 안해”… 쪼개진 공화당 지도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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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한달도 안남기고 ‘적전분열’

 
미국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공화당 지도부가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지원 여부를 놓고 충돌하는 초유의 적전분열(敵前分裂)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가 9일 2차 TV토론에서 선전하면서 음담패설 동영상 파문으로 불거진 후보 사퇴론은 수그러들었지만 후폭풍은 여전히 거세게 불어닥치고 있다.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10일 소속 의원들과의 통화에서 “더이상 트럼프를 방어하거나 (그를 위해) 유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남은 선거 기간 공화당이 의회 권력을 유지하는 데 주력하겠다. 여러분도 각 지역구에서 하원 선거에 집중해 달라”고 호소했다. 대선은 포기하고 각 지역 의석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말이다. 공화당 2인자인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대선에 대해서는 나에게 묻지 마라. 그냥 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매코널도 라이언과 같은 입장이란 것을 자신의 스타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당 1, 2인자의 발언은 트럼프 지지 철회는 아니지만 정치적 인연을 끊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라이언 의장의 발언에 분노했다. 그는 트위터에서 “라이언은 당 대선 후보인 나와 싸울 게 아니라 예산 확보, 일자리 창출 등과 싸워야 한다”며 거칠게 비난했다.

 사실 라이언 의장은 음담패설 동영상과 무관하게 이전부터 트럼프와 불편한 관계였다. 실제로 대선 과정에서 뚜렷한 역할도 하지 않은 채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게다가 트럼프는 의회 권력을 조롱하는 ‘워싱턴 아웃사이더’ 브랜드로 여기까지 온 만큼 의회 협조는 크게 기대하지도 않는 눈치였다. 그럼에도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당이 똘똘 뭉치기는커녕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모양새는 유권자들에게 정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와 친분이 깊은 라인스 프리버스 공화당전국위원회(RNC) 위원장은 2차 TV토론 뒤 적극 지지 뜻을 분명히 했다. RNC는 미 전역의 당 선거 인력과 관련 예산을 관장하는 핵심 선거 조직이다. 프리버스 위원장은 이날 “RNC는 트럼프 뒤에 있을 것이며 당과 트럼프 캠프는 하나가 돼 선거에 공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통령 후보인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도 이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후보 사퇴설은 거짓”이라고 못 박았다. 경선 경쟁자였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도 지지자들과 만나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며 트럼프 지지 의사를 재확인했다.

 음담패설 동영상 폭로 후 공화당 의원 20여 명이 트럼프 후보 사퇴를 촉구했지만 2차 토론 후 그 수가 늘거나 줄지는 않았다. ‘더 힐’은 “공화당 의원들도 당 지도부의 내분 사태를 좀 더 관망한 뒤 트럼프 지지 여부를 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를 놓고 이처럼 두 공화당 차세대 주자인 라이언 의장과 펜스 부통령 후보가 엇갈린 길을 걷는 것은 내달 8일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내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 둘은 열한 살(펜스 57세, 라이언 46세)의 나이 차에도 둘도 없는 친구 사이지만 트럼프를 놓고선 대립하고 있다.

 펜스는 최근 1주일 동안 트럼프를 두 번이나 살려냈다. 4일 부통령 후보 토론에서 판정승하며 기세를 살린 데 이어 음담패설 파문 와중에도 후보 사퇴설을 일축했다. 폭스뉴스는 펜스를 두고 “트럼프의 최고 방어사령관(defender in chief)”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라이언 의장은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지지 유세를 하는 둥 마는 둥 한 데 이어 이번에도 트럼프에게 등을 돌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게 언론들의 평가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라이언#트럼프#공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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