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동정민]유럽에서 불러보는 ‘청년 찬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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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파리 특파원
동정민 파리 특파원
지난달 1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로 2016’ 결승전.

홈팀 프랑스가 결승까지 올랐다. 한국이 주요 축구 경기마다 광화문에 모이듯 프랑스의 상징 에펠탑 밑에는 ‘팬존’이 마련됐다. 프랑스 TV 방송국들은 경기 내내 이곳에 모인 팬들의 열렬한 응원 모습과 인터뷰를 보도하며 흥을 돋웠다.

그렇게 경기가 끝나고 독일 언론을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 팬존이 마련된 에펠탑 바로 밑에서 폭동 수준의 충돌이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축구장에서 프랑스팀이 포르투갈과 치열한 전반전을 치르는 동안 에펠탑 밑에서는 쓰레기에 불을 붙여 던지는 청년들과 최루가스와 물대포로 맞대응하는 경찰 간의 전투가 벌어졌다. 수용 인원 9만 명을 넘어 10만 명 이상이 몰려들자 경찰이 팬존 출입을 막은 것이 청년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자세한 소식을 듣고 싶어 바로 프랑스 언론 사이트를 뒤졌지만 아무런 보도가 없었다. 50명이 체포됐다는 보도가 뒤늦게 있었지만 의외로 너무 잠잠했다. 어찌 보면 외부 테러만 걱정하다 정작 내부에서 터져 나온 국제적인 망신거리였다.

며칠 뒤 30대 후반 프랑스인에게 물었다.

“엄청난 사건 같은데 프랑스 언론도, 여론도 너무 잠잠하다.”

웃으면서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는 그의 대답에 기가 막혔다.

“젊은이들이 그럴 수도 있죠, 뭐.”

질서를 해치는 건 분명한 잘못이지만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의 치기 어린 행동을 뭐 그리 따지냐는 뉘앙스였다. 프랑스는 매년 마지막 날 길가에 세워진 수백 대의 차량이 부서진다. 이유도 없다. 그냥 청년들의 과격한 장난이다.

“원래 청년들은 사회에 불만이 많잖아”라고 말한 그 프랑스인은 한국에서는 청년들이 어떻게 사회 불만을 푸는지 물었다. 과격한 인터넷 댓글 외에는 언뜻 떠오르지 않았다.

테러 취재차 독일 뮌헨에 갔다가 뮌헨대 경영학과에 다니는 한국인 유학생을 만났다. 그는 유학생 겸 사장님이었다. 독일에 진출하려는 외국 기업을 현지와 연결해주는 사업을 같은 과 친구와 함께 벌이고 있었다.

뮌헨대는 세계 대학평가에서 30위에 드는 독일 최고 대학이다. 그는 취업 대신 계속 그 일을 하겠다고 했다. 경영학과 학생들은 자기처럼 취업 대신 다들 창업을 한다고도 했다. 그들이 용감할 수 있는 이유는 실패가 두렵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만 채택되면 초기 창업자금은 학교나 정부가 대주거나 구해준다. 자리를 잡을 때까지 그 분야 최고의 멘토도 배정해준다. 독일 지멘스 전 최고경영자(CEO) 등 쟁쟁한 선배들로 풀이 구성돼 있다. 청년들이 실패하지 않고 꿈을 펼치도록 기성세대들이 발 벗고 나서는 것이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달 청년들을 만나 “청년이라는 특권으로 어떤 실패도 부끄럽지 않다는 정신으로 도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국 정치인들이 많이 하는 말이다.

현실은 어떤가. 꿈을 찾아 잠시 한눈을 팔았다가는 취업 시기를 놓쳐 사회의 낙오자가 되기 쉽다. 도전하라던 기성세대는 “우리는 맨손으로 일궜는데 제 밥값도 못 한다”며 한심해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달라고 한 적도 없는 청년수당, 취업수당으로 갑론을박이다. 기껏해야 인터넷 댓글로 사회 불만을 해소하는 한국 청년들은 어찌 보면 착하다는 생각도 든다. 기성세대들이 할 일은 청년들이 실패해도 괜찮은 진짜 ‘특권’을 찾아주는 거다. 그걸 못한다면 젊은이들이 맘껏 소리라도 지르게 월드컵이라도 한 번 더 유치하는 게 나아 보인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프랑스#청년#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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