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낮추고 돈 계속 풀어도 약발 안 먹혀”

  • 동아일보

소비 안 살아나고 ‘유동성 함정’에… 각국 중앙은행, 통화정책 딜레마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얼어붙은 경기를 살리기 위해 시장에 돈을 풀어도 딱히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딜레마에 빠졌다. 기준금리를 낮추거나 채권을 사들여 자금을 푸는 통화정책이 힘을 잃어 통화정책 무용론까지 나온다.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이 양적완화를 발표하자 세계 국채 금리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11일 파이낸셜타임스는 BOE가 자산 매입 규모를 700억 파운드(약 100조 원) 늘린 후 국채 매입에 본격적으로 나선 지 사흘째인 10일 영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사상 최저치인 0.51%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스페인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0.9%로 사상 최저치를 찍었고 아일랜드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0.33%로 바닥을 쳤다. 중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2.7%까지 떨어지며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국채 금리가 떨어졌다는 것은 국채 값이 올랐다는 뜻이다. 막대한 돈이 국채로 몰리며 국채 값이 뛴 것이다. 당초 중앙은행은 투자자들이 국채가 아닌 민간 투자처에 돈을 써 경기를 되살리길 기대했지만 투자자들은 경기가 살아나지 않을 것을 우려해 안전 자산인 국채를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마이크 아메이 핌코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영국의 6개월짜리 양적완화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 고작 사흘째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 같은 (시장의) 반응은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국채가 귀해지면서 BOE는 채권을 목표치만큼 사들이지 못해 양적완화 정책이 초기부터 삐걱대고 있다. BOE의 전직 임원 2명은 로이터통신에 “영국 통화정책은 심각한 한계에 이르렀다.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중앙은행이 자금을 풀어도 통화가 목표치만큼 안 돌고 민간 투자 증가율도 둔화되자 “중국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는 중앙은행 관계자의 진단이 나왔다. 유동성함정이란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추고 시중에 돈을 풀어도 투자와 소비가 늘지 않아 경기가 활성화되지 않는 현상을 뜻한다.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나라에선 오히려 저축률이 높아지는 모순도 나타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마이너스 금리를 쓰는 덴마크 스위스 스웨덴에서 지난해 저축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95년 이후 가장 높았다. 올해는 덴마크 8.1%, 스위스 20.1%, 스웨덴 16.5%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에서도 중앙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려도 효과가 크지 않고 가계 부채 문제도 심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말 국회를 찾아 “통화정책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라며 국회와 정부의 재정정책과 구조 개혁 노력을 당부했다.

각국은 과거 케인스가 주장했듯 통화정책 대신 ‘재정 풀기 경쟁’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27일 28조 엔(약 305조 원)의 부양 패키지를 발표했다. 영국 정부도 올가을 경기 부양책을 발표할 것을 시사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금리#중앙은행#통화정책#유동성 함정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