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얼짱맘’ 로마 사상 첫 女시장 예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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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정체 해소-쓰레기 처리 등 ‘생활밀착’ 공약으로 지지율 1위
佛-스페인서도 ‘생활정치 女風’… 부패한 ‘큰정치’ 불신 편승 약진
“인기 있지만 능력 의문” 비판도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나갔는데 거리에 인도가 없어 차량들 사이로 다녀야 했다. 결국 공원 가는 것을 포기했다. 내가 공적인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이때부터다.”

5일 이탈리아 1300개 도시에서 치러지는 시장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관심은 일곱 살 아들을 둔 정치 신예 여성 변호사에게 쏠려 있다. 그가 당선되면 서양 문명의 중심,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 역사상 최초의 여성 시장이 된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야당인 ‘오성(5星)운동’ 소속 비르지니아 라지 후보(37·사진)는 여당인 민주당 소속의 로베르토 자케티 후보와 임신 상태로 출마한 또 다른 여성 후보자 조르지아 멜로니를 여유 있게 제치고 1위를 달리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5일 라지 후보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생활밀착형 공약을 내세워 ‘생활 정치’를 시도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새 빗자루로 청소해야 로마가 깨끗해질 수 있다’는 슬로건을 내건 그의 공약 1번은 교통 정체 해소, 2번은 쓰레기 문제 해결이다. 공약치곤 너무 사소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라지 후보는 “공공 교통 체계가 무너지고 학교와 길거리에 쓰레기가 널려 있는 로마는 재앙이다. 우리를 돌보지 않고 로비에만 관심 있는 기성 정당은 신뢰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길거리 쓰레기와 낙서를 없애고 버스와 기차가 제시간에 도착하게 하는 것이 정치라는 주장이다.

라지 후보는 마테오 렌치 총리가 2024년 로마 올림픽 유치를 신청한 데 대해서도 “범죄 행위”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시민들이 일상에서 불편을 겪고 있는데 올림픽 같은 업적 쌓기용 대형 이벤트 유치에 혈안이 돼 있는 것은 문제라는 비판이다.

유럽의 다른 도시에서도 생활 정치를 내건 여풍(女風)이 거세다. 프랑스 파리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최근 최초의 여성 시장이 잇달아 당선됐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의 마누엘라 카르메나 시장도 ‘작은 정치’를 구호로 매일 아침 마드리드 북쪽 외곽에서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면서 ‘개똥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처럼 작은 정치를 내세운 여성 후보들이 약진하는 배경에는 ‘큰 정치’를 하는 부패한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라지 후보도 이탈리아 정계의 뿌리 깊은 부패에서 반사 이익을 얻고 있다. 지난해 전임 시장인 이냐치오 마리노는 공금으로 개인 밥값을 냈다는 의혹에 휘말려 사임했다. 마피아 범죄 조직과 로마 시의 결탁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라지 후보의 소속 정당인 ‘오성운동’도 기존 정당에 염증을 느낀 시민들이 만든 온라인 중심의 대안 정당이다. ‘오성’은 깨끗한 물, 지속가능한 교통 체계, 지속가능한 개발, 인터넷에 접속할 권리, 생태주의를 뜻한다.

여성 시장들의 작은 정치 실험을 불안한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라지 후보는 “재사용이 가능한 기저귀를 쓰면 인센티브를 주겠다” “로마에 물물교환 카드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았다. “이탈리아가 유로존에서 탈퇴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미안하다. 그 이슈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답해 무지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이탈리아의 유명 칼럼니스트 마시모 프랑코는 “그녀의 인기는 전통 정당의 실패와 시민들 사이에 넓게 퍼진 저항과 반란의 표현이지만 그녀의 능력은 의문점”이라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라지 후보에게 시장 당선은 ‘독이 든 성배(聖杯)’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로마#시장#첫여자시장#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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