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긴 외모와 멋진 언행으로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가 많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45)가 의회에서 평소 이미지와 다른 ‘터프 가이’ 행세를 하다가 망신을 산 끝에 사과했다.
집권 자유당을 이끌고 있는 트뤼도 총리는 18일 오후 안락사법 심의와 토론이 진행 중이던 하원에서 돌연 야당 쪽 의석으로 건너가 보수당의 고든 브라운 원내대표를 거칠게 잡아끌어 자리로 몰고 갔다. 이 과정에서 트뤼도 총리 뒤쪽에 서있던 신민주당(NDP)의 여성의원 루스 앨런 브로소의 가슴을 팔꿈치로 건드리는 신체 접촉이 일어났다.
이날 하원에선 정부가 제출한 안락사법에 대한 논의가 길어져 집권 자유당이 제안한 토론 종결 요구 동의안 표결을 진행 중이었다. 캐나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안락사 합헌 판결을 내고 올해 6월까지 그에 상응하는 관련 법안 마련을 주문했다. 이에 따라 캐나다 정부가 안락사법을 제출했는데 보수당과 신민주당 등 야당의 반대 토론으로 표결이 계속 미뤄지자 신속한 표결을 위해 토론을 종결하자는 여당안에 대한 투표가 진행되려던 참이었다.
캐나다 CBC방송이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 현장에서 표결이 지연되는 걸 지켜보던 트뤼도 총리는 갑자기 야당의원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 브라운 원내대표의 팔을 거칠게 잡아끌어 그의 좌석으로 데려갔다. 캐나다 의회에선 여야 원내대표가 전원 착석해야 투표가 시작될 수 있는데 브라운 의원이 빨리 자신의 의석에 앉지 않자 이를 지켜보던 트뤼도 총리가 직접 출동해 야당의원들 사이에서 끌고나온 것.
그 순간 옆에 서 있던 브로소 여성 의원이 몸을 움츠리며 트뤼도 총리를 피했으며, 회의장 비디오 판독 결과 이 때 그의 팔꿈치가 브로소 의원의 가슴을 건드린 것으로 확인됐다. 브로소 의원은 가슴을 움켜쥐며 “총리가 팔로 나의 가슴을 건드렸다”고 소리쳤고 야당 의석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캐나다 하원에서는 여야 간 열띤 토론 도중 지지 환성과 야유가 교환되기는 하지만 이날처럼 신체 접촉 등의 물리적 사태가 일어나는 것은 매우 드물다. 이 때문에 야당의원들의 질책이 줄을 이었다. 피터 줄리안 신민주당 원내대표는 “의정생활 12년 동안 이런 행위는 본 적이 없다”며 “다른 나라 의회의 물리적 사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지만 캐나다 현대사에 이런 일은 전례가 없다”고 탄식했다. 같은 당 니키 애쉬턴 의원은 “우리나라 최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는 현장에 목격자가 된 것이 부끄럽기만 하다”고 힐난했다. 녹색당의 엘리자베스 메이 대표도 “총리가 표결 대열에 다가가는 것은 대단히 경솔한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트뤼도 총리는 신속하게 사과했다. 그는 “야당 원내대표가 표결의 절차를 지연하려 한다고 생각했다”면서도 “변명의 여지가 없고 수용될 수 없는 행동이었다”고 밝혔다. 또 브로소 의원의 가슴을 건드린 것에 대해서도 “뒤에 있어 보지 못한 사람과의 접촉도 있었으나 절대 공격하거나 위해를 가할 의도가 없었다”며 “주저 없이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 관여된 의원과 부정적 감정을 느끼게 된 다른 의원에게도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기회를 마련하겠다”며 거듭 사과했다. 하지만 이날 트뤼도 총리가 이끄는 자유당이 제안한 토론 종결 동의안은 결국 172대 137표로 부결됐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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