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統獨 주역’ 겐셔 前 독일 외교장관 별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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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미트-콜정권서 18년간 외교 책임… 동서 균형외교로 평화통일 이끌어
‘겐셔리즘’ 실리추구외교의 상징

동서독 통일의 주역이자 통일 독일 초대 외교장관인 한스디트리히 겐셔 전 외교장관이 지난달 31일 독일 본 교외의 자택에서 숨졌다고 그의 비서실이 이날 발표했다. 향년 89세.

1974∼1992년 무려 18년이나 독일 외교를 책임진 겐셔 전 장관은 미국 등 서방과 굳건한 관계를 구축하면서도 옛 소련 등 동구권과도 화해를 모색한 능수능란한 외교 노선을 폈다. 균형을 통해 실리를 추구한 그의 외교 노선을 일컫는 ‘겐셔리즘’이라는 용어까지 탄생했을 정도다.

1927년 옛 동독 지역인 작센안할트 주 라이데부르크에서 태어난 겐셔 전 장관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3년 독일 군대에 징집됐다가 미군의 포로가 됐다. 전쟁이 끝난 후 소련 점령 지구의 할레와 라이프치히의 두 대학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변호사 자격을 얻고 1952년 서독으로 탈출해 자유민주당(FDP)에 입당했다.

1965년 연방 하원의원이 된 뒤 소수당인 자유민주당을 이끌게 된 그는 1969년 빌리 브란트 총리의 사민당(SPD)과 연정을 성사시키며 내무장관에 발탁됐다. 5년 뒤인 1974년 사민당의 헬무트 슈미트 정권에서 외교장관에 기용됐고 1982년 헬무트 콜이 이끄는 기독교민주당(CDU)이 다수당이 되자 자유민주당과 연정을 성사시켜 외교장관(부총리 겸임)의 역할을 이어갔다. 역대 독일 최장수 외교 수장(首長)의 전설은 1992년 그가 스스로 물러설 때까지 계속됐다.

그는 자신의 외교 인생의 정점을 1989년 9월 30일 저녁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의 서독 대사관에서 망명을 요구하던 동독 주민 4000여 명에게 협상 결과를 발표한 장면이었다고 회고했다. 그가 대사관 발코니에서 “친애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출국이 허가됐음을 알려드리려 왔습니다”라며 다음 연설을 이어갔다. 하지만 뒤의 내용은 동독 주민의 열화와 같은 환호에 묻혀 버렸다. 이 조치는 그해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로 이어졌다.

동독 출신으로 베를린 장벽 붕괴 소식에 정치 입문을 결심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대변인을 통해 “위대한 정치인이자 유럽인, 독일인이었던 그를 기리면서 나는 너무나 작은 사람임을 느낀다”는 애도 메시지를 발표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겐셔리즘#실리외교#균형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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