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마음 못놓는 1위… 여유로운 트럼프, 진짜 대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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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美대선 3차 경선]공화, 23일 네바다… 민주, 27일 사우스캐롤라이나서 4차 경선

《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20일 네바다 주 코커스(당원대회)에서 52.7%를 얻어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47.2%)을 꺾었다.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프라이머리(예비경선)에서 32.5%로 마코 루비오(22.5%)와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22.3%)을 여유 있게 따돌렸다. 9일 뉴햄프셔 주 경선에서 샌더스에게 일격을 당한 뒤 네바다 여론조사에서도 샌더스에게 턱 밑까지 쫓겼던 클린턴은 이날 5%포인트 넘는 차이로 승리해 다시 대세론에 불을 지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트럼프는 뉴햄프셔에 이어 2연승을 거뒀다. 전통적 공화당원이 많은 이곳을 거머쥐면서 ‘아웃사이더’를 넘어 공화당 주류 후보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커졌다. 공화당은 23일 네바다, 민주당은 27일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각각 4차 경선을 치른다. 》

○ 벼랑끝서 대세론 재점화… 힐러리, 네바다서 값진 승리

여성-흑인 몰표 5%P 差로 꺾어… 슈퍼화요일 등 남은 일정도 유리

샌더스, 전국 여론조사서 첫 추월 “바람은 우리 뒤에… 7월까지 갈것”


“어떤 이들은 나의 승리를 의심했지만 우리는 서로 의심하지 않았다.”

20일 민주당 네바다 코커스에서 승리한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69)이 라스베이거스 연설에서 던진 첫마디는 안도의 한숨이었다. 그동안 위기감이 컸다는 의미다.

클린턴은 1차 경선 아이오와에서 간신히 이기고(0.25%포인트 차), 2차 뉴햄프셔에서는 크게 졌으며(22.45%포인트), 네바다에서 5%포인트 넘는 차로 온전한 승리를 거머쥐었다. CNN은 “네바다의 승리는 클린턴에게 1승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네바다는 백인 비율이 높은 아이오와나 뉴햄프셔와 달리 인종별 구성이 전국 구성비와 비슷해 유색인종의 표심을 가늠할 수 있는 첫 번째 경선 지역이다. 클린턴은 이곳에서 승리함으로써 전국 단위의 경쟁력에서 여전히 우위에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이날 꺼져가던 클린턴 대세론을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75)의 돌풍에서 구해낸 ‘정치적 방화벽(firewall)’은 흑인들이다.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네바다 유권자의 13%를 차지하는 흑인 유권자의 76%가 클린턴에게 몰표를 줬다. 최근 연방의회 흑인 의원들이 지지 선언을 한 것이 큰 힘이 됐다. 히스패닉(전체 유권자의 19%)은 53%가 샌더스를 지지했고, 백인 표(59%)는 두 후보가 절반씩 나눠 가졌다. 뉴햄프셔에서 클린턴을 외면했던 여성 표도 이번에는 57%가 클린턴을 찍었다.

앞으로 남은 일정은 클린턴에게 유리하다. 27일 4차 경선이 열리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는 흑인 인구가 27.8%로 미국 전체 평균(13.2%)의 두 배를 넘는다. 워싱턴포스트는 “샌더스가 히스패닉 표를 잠식해 들어가고 있지만 클린턴이 흑인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어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훨씬 어려운 싸움을 하게 됐다”고 전망했다. 샌더스가 유권자의 95%가 백인인 버몬트 주에서만 40년간 정치활동을 해 흑인 유권자들에게 다가갈 줄 모른다는 분석도 나온다.

클린턴이 이곳 프라이머리에서 대승하면 전체 판세를 가르는 3월 1일 ‘슈퍼 화요일’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다. 클린턴은 흑인 비율이 높은 앨라배마 조지아 텍사스 아칸소 버지니아 주를 포함해 15개 슈퍼 화요일 경선 지역 대부분에서 앞서고 있다. 슈퍼 화요일 경선이 끝나면 대의원의 25.6%가 결정된다. 이후 판세가 뒤바뀐 경우는 거의 없었다. 클린턴은 전현직 상하원 의원과 주지사 등 고위 인사들로 구성된 슈퍼 대의원 712명 가운데 430여 명을 이미 확보해 놨다. 샌더스가 확보한 슈퍼 대의원은 16명에 불과하다.

클린턴의 네바다 승리가 샌더스 돌풍의 끝은 아니다. 폭스뉴스가 18일 발표한 전국 단위 여론조사에서는 처음으로 클린턴을 앞섰다. 3%포인트 차였다. 샌더스는 네바다 경선 패배를 인정하면서 “바람은 우리 뒤에 있다. 기성 제도에 도전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우리는 모멘텀을 가지고 있어 7월 필라델피아 전당대회에서 정치적 전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1일 다음 경선 지역인 사우스캐롤라이나로 가려던 계획을 접고 흑인 유권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매사추세츠 주로 날아가 유세하기로 했다.
○ 아웃사이더에서 주류로… 트럼프, 공화당 텃밭서 2연승

‘교황에 막말’에도 기독교층 지지… 대의원 50명중 44명 휩쓸어가

黨주류 ‘크루즈-루비오 연대’ 거론, 트럼프 “애플 거부… 삼성제품만 쓸것”


“USA! USA!(미국 만세!)”

20일 오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스파턴버그 매리엇 호텔. 공화당 프라이머리(예비경선)에서 압승한 도널드 트럼프(70)가 승리 확정 연설을 하러 단상에 오르자 지지자 2000여 명은 휴대전화로 그의 모습을 찍으며 이렇게 외쳤다. 가슴이 벅찬 듯 숨을 크게 고른 트럼프는 “USA!”를 따라 외친 뒤 “중국, 일본과의 경제 전쟁에서 반드시 이기겠다”고 외쳤다. 트럼프는 “승리는 아름다운 것이다. 반드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워싱턴 아웃사이더’ 트럼프의 연승은 기성 정치에 대한 미국인들의 분노가 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승자독식제가 일부 적용된 이날 경선에서 공화당 대의원 50명 중 44명을 트럼프가 가져갔다. CNN 출구조사에서 공화당 경선 참여자 중 52%는 공화당에 ‘정치적 배신’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경제 문제, ‘이슬람국가(IS)’로 상징되는 테러 위협 등에 정치권이 제대로 대응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응답자 97%는 미국의 경제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가 남부의 공화당 텃밭인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승리하면서 공화당 주류 후보로 부상하는 입지를 공고히 했다. 이 지역은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가 전체 인구의 72%일 정도로 보수적 공화당 색채가 강한 곳이다. CNN 출구조사에서 복음주의 신자로부터 트럼프는 33%를 얻어 부친이 복음주의 목사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46·27%)을 제쳤다. 경선 직전 자신을 “기독교인이 아니다”라고 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수치스럽다”는 막말을 했는데도 기독교 유권자들의 탄탄한 지지를 얻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에겐 뉴햄프셔보다 공화당 본산 중 한 곳인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의 승리가 훨씬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2위 자리를 놓고 난립했던 공화당 주류 후보들이 마코 루비오(45)와 크루즈로 정리되면서 트럼프의 경쟁력은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63)의 중도 하차로 공화당은 ‘1강 2중’의 3파전이 됐다. 공화당 주류층에선 루비오와 크루즈의 합종연횡 카드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둘 중 한 사람에게 힘을 실어 트럼프 대세론을 꺾겠다는 것이다. NYT는 비교적 온건한 루비오가 공화당 주류의 선택을 받아 결국 ‘트럼프 대 루비오’의 2파전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만약 트럼프-샌더스라는 극단 구도가 형성됐을 때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출마하게 되면 트럼프에게는 호재가 된다.

한편 트럼프는 경선 전날인 19일 유세 도중 “애플을 당분간 거부한다. 삼성전자의 휴대전화만 쓰겠다”고 선언했다. 애플이 테러 용의자들의 아이폰을 잠금 해제할 수 있도록 정부에 협조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거부한 데 대한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는 애플과 삼성의 휴대전화를 모두 쓰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측은 이날 발언을 아이폰을 이용해 트위터에 올렸다.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미국#대선#힐러리#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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