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부동산재벌 2세, 마이크 켜진줄 모른채 ‘살인 고백’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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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前 다큐 녹화중 화장실서 혼잣말… 방송사 뒤늦게 확인하고 FBI 제보
법적증거 채택 여부는 의견 갈려

미국에서 살인과 실종 등에 연루된 혐의를 받아온 부동산 재벌의 자백 음성이 공개돼 화제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했냐고? 물론 전부 죽였지.” 미국 부동산 재벌 2세 로버트 더스트(71·사진)는 2년 전 다큐멘터리 녹화 도중 잠시 화장실에 들른 사이 이렇게 혼자 읊조렸다. 당시 화장실엔 아무도 없었지만 그가 차고 있던 마이크로 녹음이 돼 세상에 공개됐다.

그의 자백 음성은 15일 더스트의 생애를 다룬 케이블방송 HBO의 6부작 다큐멘터리 ‘징크스(The Jinx·불길한 징조)’를 통해 전파를 탔다. 방송사는 최근 다큐멘터리 작업을 마무리하던 중 해당 파일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HBO의 제보로 방송 하루 전날인 14일 밤 뉴올리언스의 한 호텔에서 더스트를 살해 혐의로 체포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5일 “방송사 PD가 30년 넘게 경찰이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며 “재벌, 살인, 비밀, 방송을 통한 폭로라는 흥행 요소를 모두 갖춘 사건에 누리꾼들이 폭발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더스트는 자산 40억 달러(약 4조5000억 원) 규모의 부동산 재벌 시모어 더스트의 장남이다. 그는 지난 30년간 2건의 살인사건과 1건의 실종사건에 관여했다는 의심을 받아왔지만 그때마다 호화 변호인단을 꾸려 법망을 피해갔다. 부동산 재벌 가문의 비밀과 실종 사건을 담은 그의 이야기는 2010년 영화 ‘올 굿 에브리씽’으로 제작됐다.

더스트가 처음 의혹을 산 것은 1982년 아내 캐슬린이 실종되면서부터. 그는 기차역에 데려다준 아내가 사라졌다고 경찰에 실종신고를 냈지만 경찰은 더스트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이웃들이 “캐슬린이 평소 ‘내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남편이 벌인 일’이라고 말했다”고 증언한 것이다. 하지만 끝내 증거를 찾지 못했고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2000년에는 더스트의 대학 동창이자 여자친구였던 수전 버먼이 실종사건의 실체를 알고 있다는 제보가 있어 재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버먼이 자택에서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에도 경찰은 더스트를 범인으로 의심했지만 증거가 없었다. 더스트는 또 2004년 이웃 모리스 블랙을 살해한 뒤 시체를 토막 내 바다에 버린 혐의로 체포됐지만 유명 변호사를 선임해 정당방위를 인정받았다.

HBO 방송팀은 지난 10년간 더스트 다큐멘터리를 준비해 왔다. 그를 둘러싼 살인사건과 실종사건에 초점을 맞춘 것. 변호인단은 방송사 측이 더스트를 잡기 위해 이번 시리즈를 기획하고 수사 당국과 협력했다고 주장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더스트의 살인 행각은 이번에도 법망을 피해 갈 것인가. 미 법조인들 사이에선 더스트의 육성파일이 사적 공간에서 한 혼잣말이어서 증거능력이 없다는 의견과 충분히 증거가 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한편 그의 동생은 “이번 일로 형이 죗값을 치르게 돼 다행”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부동산재벌#마이크#살인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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