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日, 납치문제 전면 재조사… 對北 독자제재도 해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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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北 “전격 합의” 동시 발표

북한과 일본이 26∼2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일 국장급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 전면 재조사에 전격 합의했다. 일본은 납치 피해자 재조사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대북 독자 제재 조치를 해제하고 대북 지원을 검토키로 했다.

납치 피해자 재조사는 2008년 김정일-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정권 시절에 합의한 뒤 6년 만이다. 외교가에서는 재조사 진전에 따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연내 방북설까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섣부른 합의로 한미일 대북 제재 공조체제가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납치 조사-제재 해제 맞교환

아베 총리는 29일 저녁 국장급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임시 기자회견을 열어 “납치 피해자와 납치 의혹을 배제할 수 없는 행방불명자를 포함해 모든 일본인에 대한 포괄적 전면 조사를 실시하기로 (북한이) 약속했다. (북한에) 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돼 조사가 시작된다”고 발표했다. 조사위 출범 시점은 3주 안팎으로 전해졌다.

조선중앙통신도 이날 같은 시간에 “우리 측은 포괄적이며 전면적인 조사를 진행해 최종적으로 일본인에 관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의사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특별조사위를 설치하고 납치 피해자 및 행방불명자, 1945년 전후 사망한 일본인 유골 및 묘지, 북한 잔류 일본인과 배우자 등에 대한 포괄적인 조사를 진행키로 했다. 북한은 특별조사위의 조사 및 확인 상황을 일본 측에 통보하고 일본인 유골 처리와 생존자가 발견되면 귀국시키는 방향에서 거취 문제를 협의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본은 그 대신 특별조사위가 조사를 시작하는 시점에 △북-일 간 인적 왕래 규제 △송금 및 휴대금액 제한 규제 △인도주의적 목적의 북한 국적 선박의 일본 입항금지 조치 등을 해제하기로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일본 측은 적절한 시기에 공화국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 실시를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양측 불신의 벽 넘을지 주목


북-일 양국의 구체적인 발표 내용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일본이 인도주의 지원 실시를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힌 반면에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현 시점에서 인도적 지원을 실시한다는 구체적인 전망이 없다. 조사 상황을 봐가며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이 때문에 두 나라 사이에 모종의 이면 합의가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이 해결을 강하게 요구하는 도쿄(東京)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중앙본부 건물 경매 문제도 이면 합의의 한 대상으로 거론된다.

조선중앙통신은 또 2002년 9월 북-일 평양선언에 따라 재일조선인들의 지위 문제를 성실히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역시 급속히 세력이 약화되고 있는 총련계 교포들의 이탈을 막고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관심을 선전하기 위한 퍼포먼스로 풀이된다.

다만 앞으로 북한의 재조사 결과를 일본이 곧이곧대로 수용할지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자국민 17명을 납치 피해자로 공식 인정하고 있다. 이 중 5명이 2002년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북한은 나머지 12명 중 8명은 사망했고 나머지 4명은 북한에 입국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북한은 2004년 5월 사망했다는 요코타 메구미(橫田惠) 씨의 유골을 일본에 송환했으나 유전자(DNA) 감식 결과 다른 사람의 유골로 판명돼 일본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일본 민간단체는 약 860명이 북한에 납치된 것으로 의심되는 ‘특정 실종자’라고 발표했다.

○ 한국은 “돌출 행동에 불쾌”

외교부는 이날 북-일 합의가 가져올 파장을 놓고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공식 입장은 내지 않았지만 아베 총리의 돌출 행동에 불쾌하다는 속내를 비쳤다. 북한의 도발 위협에 맞서 국제사회가 단호하게 한목소리를 내야 할 상황에서 일본이 돌출 행동을 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외교 당국자는 “북핵 6자회담의 고비마다 일본이 납북자 문제로 결론 도출을 가로막았는데 또다시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납북자 조사 재개에 맞춰 인적 왕래 규제를 풀고 여행객의 휴대 가능 현금과 송금 제한을 해제하면 만성적인 외화 부족에 허덕이는 북한에 숨통을 틔워주게 된다. 또 인도적 지원까지 이뤄지게 되면 북한은 북핵 6자회담 및 남북대화 복귀 필요성을 그만큼 덜 느낄 수 있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스웨덴의 북-일 교섭 과정에 대해 “일본이 북한과의 접촉에 대한 정보를 한국과 충분히 공유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우려했다.

미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주목된다. 양국이 전날 교섭을 끝내고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연막을 피우다 29일 갑작스레 합의 내용을 발표한 것은 미국 측에 사전 설명할 시간을 벌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스가 관방장관은 한미일 대북 공조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지적에 “외교 루트를 통해 조정을 한 끝에 나온 판단이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날 기자회견 사실조차 사전에 통보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배극인 bae2150@donga.com   
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북한#아베#일본인 납치 재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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