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2일 현재의 중-일 갈등이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영국-독일 관계와 유사하다며 전쟁 발발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아베 총리의 발언은 ‘몰역사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국제사회의 도마에 올랐다.
2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스위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아베 총리는 기조연설 뒤 주요국 언론사 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 “1차 대전 전 영국과 독일은 현재의 중국과 일본처럼 강력한 경쟁 관계였지만 1914년 전쟁을 막지 못했다”고 말했다. FT 외교전문 칼럼니스트인 기디언 라크먼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가능하냐”고 질문한 데 대한 답변이었다.
아베 총리는 지역 긴장의 책임을 중국에 돌리며 “중국이 매년 10%씩 군사비를 늘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국과의 어떤 우발적인 충돌도 재앙이 될 수 있다. 중-일 간에 군사적 소통 통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아베 총리는 “(중-일) 긴장을 줄이기 위한 계획이 있느냐”는 BBC 기자의 질문에 “중국이 군사력 강화를 추구하는 한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아베 총리의 발언에 대해 라크먼은 블로그에서 “흥미롭게도 그는 어떤 군사적 충돌도 불가능하다는 발언을 안 했다”고 지적했다. FT 수석논설위원인 마틴 울프는 블로그에서 “아베 총리의 이런 태도는 간담을 서늘케 한다. 특히 1차 대전에 대해 거의 무심한 태도(casual way)로 언급하는 것을 보고 충격 받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이 이런 난센스에 더 결단력 있게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보스포럼 패널로 참석한 우신보(吳心伯) 중국 푸단대 교수는 이런 아베 총리를 ‘트러블메이커’라고 비판하며 “아베 총리의 리더십은 북한 김정은의 리더십처럼 예측 불가능하다”고 비난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자신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대해서도 “소위 A급 전범을 찬양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일본은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세계 평화를 희망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신사 참배를 또 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말했다.
하지만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대사는 23일자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에 대해 “미국은 지역의 긴장이 높아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총리의 (참배) 결단에 실망했다”고 미국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편 일본은 미국이 공개적으로 밝힌 ‘실망감’을 해소하기 위해 전방위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최근 주미 일본대사관은 홈페이지에 ‘일본은 과거사 문제에서 사과와 보상을 할 만큼 했다’는 내용의 영문 보고서를 올렸다.
이달 초 미 의회에서는 공화당의 데빈 눈스 하원의원과 민주당의 호아킨 카스트로 하원의원이 주도해 일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저팬 코커스’가 사상 처음으로 결성됐다. 일본을 방문하는 미국 의원도 크게 늘어 지난해에는 전년보다 2배 늘어난 28명이나 됐다.
미일 동맹의 전략적 가치를 중시하는 미국 정부는 후속 표명을 꺼리고 있다. 한일 문제는 양국이 알아서 하라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미 국무부는 22일 동해 병기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양국이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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