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노트르담성당서 “동성결혼법 반대” 공개 자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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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극우이론가, 제단 앞서 권총 쏴… 英하원, 동성결혼 허용 법안 통과

21일 오후 4시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가랑비를 맞으며 걸어온 한 노년의 신사가 성당으로 들어온 뒤 천천히 걸어 제단 앞에 섰다. 자신의 옆 바닥에 편지 한 통을 남겨 놓은 이 노신사는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자신의 입에 총구를 밀어 넣었다.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지자 올해 850주년을 맞은 성당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성당 안에 있던 관광객 수백 명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바닥에 피를 흘리고 쓰러진 남자는 도미니크 베네 씨(78·사진). 프랑스 극우 진영의 대표적인 이론가이자 행동가로 명성을 날려 온 역사학자이자 작가, 언론인이었다.

베네 씨는 동성결혼에 반대해 온 프랑스 가톨릭계의 성지인 노트르담 성당에서 많은 관광객과 신도들 앞에서 공개적인 자살을 하는 일종의 ‘순교’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언론은 전했다. 유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는 이날 죽기 전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동성결혼법을 강하게 비판하고 “지금 이 순간은 남은 인생만큼 중요하다”며 자살을 암시했다. 이어 26일 열리는 동성결혼법 반대 집회에 많이 참여해 달라고 부탁했다. 또 “15년 내에 프랑스는 이슬람주의자가 통치할 것”이라는 한 알제리 블로거의 글을 인용하며 무슬림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베네 씨는 알제리 독립 전쟁에 참전한 프랑스 공수부대원 출신. 프랑스 극우 인사들이 ‘훈장’처럼 여기는 경력을 보유한 셈이다. 이어 프랑스로 돌아와 극우단체에서 활동했다. 1956년 파리 공산당사 공격에 가담해 18개월의 징역을 살기도 했다. 출옥 후 ‘유럽-행동’이라는 잡지를 직접 창간했는가 하면 ‘역사탐구’ 잡지의 편집인을 지내며 식민지 시대에서 유럽으로 뻗어 나가는 민족주의에 대한 극우적 시각의 이론을 정립했다는 평을 듣는다. 남긴 저서만 30권이 넘는다.

극우 진영은 비통한 표정이다. 마린 르펜 국민전선(FN) 대표는 “베네 씨의 마지막 행동에 경의를 표하며 그의 죽음은 프랑스 국민을 일깨울 것”이라고 말했다.

동성결혼법 통과에 큰 목소리를 내며 앞장섰던 마뉘엘 발스 내무장관은 사건 발생 후 “노트르담은 파리를 대표하는 성당이며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징 중 하나이다. 그런 행동의 메아리를 헤아려 보겠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가뜩이나 대통령과 사회당 정권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바닥인 마당에 동성결혼법에 반대하는 세력의 심기를 건들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한편 이날 영국 하원에서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추진해 온 동성결혼 허용 법안이 찬성 366 대 반대 161로 통과됐다. 법안은 상원 논의를 거쳐 내년에 확정될 예정이다. 정부는 일정을 앞당겨 내년 상반기까지 입법 작업을 끝내기로 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노트르담성당#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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