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생환 뒤엔 ‘신의 선물’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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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만에 구조 방글라 19세 베굼
생존공간-간식박스-생수병 ‘3박자’ 부상없이 빠른회복… 새 희망의 상징

1120명의 생명을 앗아간 참혹한 건물 붕괴 현장에서 하늘은 한 생명에게 생존의 기적을 허락했다. 지난달 24일 붕괴된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사고현장에서 17일 만에 구조된 19세 여성 레슈마 베굼 씨가 기적의 주인공이다.

베굼 씨는 8층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2층 계단에서 뛰어 내려오다가 붕괴 순간을 맞았다. 하지만 머리카락만 잔해 더미에 끼었을 뿐 다른 상처는 없었다. 그가 갇힌 공간은 서 있을 수 있을 정도의 높이였다. 특히 신이 그를 위해 마련한 선물인 듯 손이 닿는 주변엔 점심용 간식박스와 생수병까지 있었다. 베굼 씨는 구출 이틀 전까지 간식을 먹었으며 물이 떨어졌을 땐 파이프로 흘러내린 빗물을 마셨다. 무너진 건물 안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크기의 공간이 그에게 허락돼 있었던 것.

그는 며칠 전부터 구조대의 작업 소음을 들었다. 파이프를 힘껏 두드렸지만 중장비의 소음에 가냘픈 구조요청은 묻혔다. 그러다가 매몰된 지 408시간 만인 10일 드디어 한 구조대원이 철 파이프를 두드리는 희미한 소리를 들었다.

마지막 생존자가 발견된 것은 지난달 28일. 이후 12일간 섭씨 30도가 넘는 더운 날씨로 인해 형체를 구분하기 어려운 부패한 시신만 발견돼 구조대도 희망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리자 구조대는 즉각 중장비를 세운 뒤 망치와 정으로 통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난달 28일 한 여성 생존자를 구출하던 중 그라인더가 일으킨 불꽃으로 가스가 폭발해 여성과 구조대원 모두 사망한 아픈 기억이 있었던 터라 최대한 조심스럽게 길을 만들었다. 40여 분 뒤 건물 잔해에 갇혔던 여성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

의료진은 베굼 씨가 신장 기능이 쇠약해졌지만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고 밝혔다.

베굼 씨는 방글라데시 북부의 한 마을에서 태어나 16세에 결혼해 자녀를 낳았지만 남편이 도망간 뒤 홀로 다카에 와서 취직했다. 월급은 50∼60달러(약 5만5400∼6만6500원). 이제 그는 ‘방글라데시 생명과 희망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는 당시 19세이던 박승현 씨(여)가 17일 만에 구조됐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방글라데시#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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