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4시 30분 버지니아 주 리스버그 시 라우든카운티 고등학교 앞. 섭씨 32도를 웃도는 땡볕에도 불구하고 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오후 7시 45분부터 열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 유세장을 찾은 사람들 중에는 아이 손을 잡고 온 부모, 유모차를 끌고 온 아줌마 부대,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노인들도 있었다.
버지니아 주는 표심이 오락가락하는 대표적인 ‘스윙 스테이트’로 이번 대선에서도 대표적인 격전지로 꼽힌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후 버지니아 주에서 38차례, 올해만도 11번이나 선거유세를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육군 모자를 쓴 애덤슨 조지 씨(81)는 “대통령을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것이 얼마나 영광이냐”며 “건강보험 개혁을 마무리하고 서민에게 득이 되는 세금정책을 펴는 오바마를 직접 보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그는 “1960년대 초 동두천 캠프 케이시에서 13개월 동안 복무했다”며 한국 언론의 특파원을 만난 것에 남다른 정을 나타냈다.
페기라는 이름만 밝힌 한 70대 여성은 “오바마 대통령은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다. 이기적인 의회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제대로 일을 못하고 있다”고 두둔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을 자세히 보기 위해 준비했다며 목에 건 망원경을 보여주면서 “입장권을 받기 위해 이틀 전에 2시간 50분 동안이나 줄을 서서 기다렸다”고 말했다.
보안 검색을 마치고 들어간 행사장은 라우든카운티 고교의 야외 잔디운동장. 행사장을 빼곡하게 메운 인파가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구호인 ‘포워드’(전진)를 외치고 흥겨운 음악소리에 맞춰 율동을 하는 등 마치 축제장에 온 듯했다. 경찰은 약 3200명이 참가한 것으로 집계했다.
찬조연설자로 나온 캐서린 후퍼 씨는 “수천만 달러를 네거티브 광고에 쏟아 붓는 슈퍼팩(Super PAC)에 선거를 맡겨 둘 수 없다”며 “우리 같은 풀뿌리운동이 활활 타오르지 않으면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을 할 수 없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오후 7시 27분 오바마 대통령을 태운 전용 헬기인 ‘머린 원’이 학교 상공에 나타나자 모두 일어서서 환호성을 질렀다. 청중들은 손가락 4개를 펼치며 “4년 더! 4년 더! 4년 더!”를 외쳤다.
오후 8시 오바마 대통령은 흰색 와이셔츠 차림에 짙은 빨간색 넥타이를 매고 소매를 걷어붙인 채 연단에 뛰어 올랐다. 행사장은 순식간에 “오바마! 오바마! 오바마!” 연호로 뒤덮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11월 선거는 미국을 근본적으로 다르게 이끌어 갈 길에 대한 선택”이며 “우리 세대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과 손자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중요한 선거”라고 말했다. 한 청중이 “오바마를 사랑해!”라고 외치자 오바마는 “나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답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이 “워싱턴의 정치가 미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의회의 구태정치를 공격하자 이에 동조해 “우∼” 하는, 의회를 야유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부자 감세를 주장하는 밋 롬니 공화당 후보에 대한 정면 공격이 이어졌다. “상위 0.1%에 해당하는 백만장자 억만장자들에게 최소한 25만 달러의 세금을 깎아주면 누가 부담을 지겠느냐?”고 묻자 청중들은 “우리가 져야 한다”고 화답했다. 오바마는 “참 똑똑한 청중들”이라고 말했고 다시 웃음이 넘쳐났다. 오바마는 “근로자들 세금을 깎아주자는 것이 나의 신조”라며 “교육 투자와 사회기반시설 투자, 기초과학 투자 같은 중대한 과제를 제쳐놓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주고 싶지 않다”고 롬니를 비판했다.
그는 “라우든카운티에서 이기면 버지니아에서 이기고, 버지니아에서 이기면 선거에서 이긴다”고 열변을 토하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한편 이날 행사장 밖에선 롬니 후보를 지지하는 팬들이 모여 시위를 벌이는 모습도 목격됐다. 시위대는 롬니 이름을 내건 대형버스 앞에서 “사회주의는 좋지 않아!” “오바마 미안해, 여긴 롬니의 나라야!”라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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