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바티칸판 위키리크스’ 배후 추적 나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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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건 유출한 교황집사 기소 “내부 권력투쟁 이용당한듯”

교황 베네딕토 16세 시종집사의 기밀 문건 유출 사건을 수사 중인 바티칸 수사당국은 집사의 배후 추적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바티칸 당국은 교황의 신임이 높았던 시종집사 파올로 가브리엘레가 혼자서 꾸민 일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고 AP통신이 28일 전했다. 일간지 라레푸블리카는 “베네딕토 16세의 오른팔이자 교황청 서열 2위인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국무장관에게 맞서 권력을 쟁취하려는 내부 쿠데타 과정에서 가브리엘레가 이용당했다”고 배후조종설을 제기했다. 라이벌 세력으로는 전 국무원장인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 세력이 지목되고 있다.

가브리엘레 집사의 기소에 앞서 교황청 은행의 에토레 고티 테데스키 행장이 해임된 것도 권력 투쟁의 맥락으로 보는 관측이 많다. 테데스키 행장이 바티칸 은행의 투명성 제고를 추진해 온 것에 이사회가 제동을 건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테데스키 행장도 베르토네 장관이 발탁한 인물이다.

조용한 성격으로 교황의 식사를 준비하고 옷을 입혀주는 일 등을 해온 가브리엘레 집사는 교황의 편지와 교황청의 비밀문서를 훔친 혐의 등으로 26일 기소됐다. 그가 외부로 유출한 문건에는 고위 성직자들이 외부 업체와의 계약에서 가격을 부풀리고 친분이 있는 업체에 계약상 특혜를 제공했으며 이 과정에서 바티칸 은행이 ‘돈세탁’까지 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이탈리아 TV 토크쇼 진행자에게 교황 알현을 주선하고 1만 유로(약 1500만 원)를 받는가 하면 바티칸 신문 편집장이 라이벌 편집장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상대방을 동성애자라고 언론에 제보했다는 내용도 있다. 바티칸은 아직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가 유출한 내용은 잔루이지 누치 기자가 최근 출간한 ‘교황 성하(His holiness)’라는 책에 담겼으며 그 충격으로 수사가 급진전됐다. 외신들은 이번 사건을 바티칸판 위키리크스(인터넷 폭로전문 사이트)라는 의미로 ‘바티리크스’로 부른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교황청#기밀 문건 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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