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모 밝혀진 이스라엘 ‘나치 전범 아이히만 체포작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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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유대인들 학살했다” 장남이 여친에게 떠벌려 덜미

첩보 영화 같았던 나치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체포 작전이 전시회로 재현된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아이히만을 법정에 세운 과정을 보여주는 ‘최후의 작전’ 전시회가 10일부터 이스라엘 텔아비브 시 베이트 하트푸트소트 박물관에서 열린다고 7일 AP통신이 보도했다.

아이히만은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유럽에 있는 유대인들을 절멸시키기 위해 만든 ‘최종 해결(Final Solution)’ 계획을 실행한 인물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50년 6월 17일 이탈리아에서 배를 타고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도주했다. 7월 14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아이히만은 ‘리카르도 클레멘트’로 이름을 바꾸고 건설사 직원, 물류업체 감독관 등의 일을 하며 숨어 살았다. 나치 친위대원 표지인 겨드랑이 안쪽의 ‘SS’ 문신도 지웠다.

하지만 그의 정체는 뜻하지 않게도 장남 클라우스 아이히만 때문에 탄로가 났다. 1957년 클라우스가 여자친구인 유대계 소녀 실비아 헤르만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유럽에서 ‘유대인 제거’에 앞장섰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린 것. 클라우스는 금발이며 독일인의 외모를 가진 실비아가 유대계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실비아의 아버지 로타어 헤르만은 2차 대전 당시 부모는 아이히만에게 희생됐고 자신도 수용소에 수감됐던 유대계 독일인이었다. 딸에게서 클라우스의 얘기를 전해 들은 헤르만은 클라우스의 아버지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게 될 전쟁범죄재판에 대한 기사 속의 인물 중 한 명이라고 추측했다. 헤르만은 즉각 유대인 수용소에서 함께 지냈던 프리츠 바워 독일 헤센 주 검찰총장에게 편지로 이 사실을 알렸다.

편지는 이스라엘 외교부에 전달됐고 모사드가 사실 확인에 나섰다. 2년에 걸친 추적과 조사 끝에 모사드는 아이히만의 신원을 확인했다. 아이히만의 사진을 찍은 뒤 전쟁 전 아이히만의 사진과 비교한 결과 귀의 특징 등을 통해 같은 사람인 것을 확인한 것.

모사드는 아이히만 체포 과정에서 아르헨티나와 주권 문제로 분쟁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아이히만을 납치해 이스라엘 법정에 세우기로 하고 작전에 나섰다.

1960년 5월 11일 오후 8시. 아이히만이 탄 버스가 집 근처에 도착했다. 집 주변에는 모사드 요원 7명과 자동차 2대가 잠복하고 있었다. 요원들은 집으로 다가오던 아이히만을 덮쳤고 요원 한 명은 곧바로 아이히만의 입 안으로 자신의 손을 넣었다. 아이히만이 독약을 먹고 자살할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요원들은 아이히만을 대기하고 있던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차에 태워진 아이히만은 체념한 듯 독일어로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모사드는 당시 아르헨티나 독립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사절단이 타고 온 여객기 항공사 승무원으로 아이히만을 위장시켜 이스라엘로 빼돌렸다. 당시 작전이 극비로 진행돼 정부사절단조차도 아이히만이 같은 비행기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후 아이히만은 1961년 텔아비브에서 열린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다음 해 교수형에 처해졌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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