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푸틴 시위, 舊蘇 붕괴후 최대규모… 러 관영방송 ‘노컷 보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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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옛 소련 붕괴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가 열리는 등 전국 60여 개 도시에서 ‘반(反)푸틴’ 물결이 넘쳤다. 총선 부정에 항의하고 내년 대선을 통해 재집권하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에 반대하는 성난 민심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야권과 시민들은 총선 무효와 재선거 일정이 나오지 않으면 24일 다시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2시 크렘린 옆을 흐르는 모스크바 강 가운데 있는 섬의 볼로트나야 광장(‘늪 광장’)으로 두꺼운 재킷에 ‘하얀 리본’을 가슴에 단 시위대가 거대한 물결처럼 몰려들었다. 모스크바 당국은 이날 3만 명으로 제한하는 집회를 허가하면서 통제가 쉽도록 강 가운데의 광장으로 집회장소를 한정했다. 경찰은 광장 길목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하고 출입자를 통제했으나 일부 시위대는 경찰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며 들어갔다.

광장 주변 등 모스크바에는 이날 대테러부대 ‘오몬’ 요원과 5만 명의 경찰, 2000명의 내무부 소속 군대가 배치되고 장갑차와 트럭 불도저 물대포 등도 준비됐으며 집회장소 상공에는 헬기가 정찰비행을 했다. 경찰은 2만5000명가량이 모였다고 밝혔으나 주최 측은 5만 명에서 최대 10만 명의 인파가 모였다고 주장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푸틴은 도둑” “푸틴 없는 러시아를 원한다” “경찰국가 안 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총선 부정에 항의하다 5일 체포돼 15일간의 구류에 처해진 유명 블로거로 반푸틴 시위의 핵심 인물로 떠오른 알렉세이 나발니의 ‘옥중 서신’도 낭독됐다. 그는 “우리는 한때 두꺼비와 쥐, 침묵하는 가축의 삶이 안정과 경제적 성장을 얻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확신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존엄, 자존감”이라며 “우리는 가축이나 노예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시간여 동안 진행된 집회는 한 명의 연행자도 없이 순조롭게 해산했다.

이날 저녁 채널 1과 로시아 1 등 관영 TV는 메인 뉴스로 “수만 명의 시민이 선거 결과에 불만을 나타내고, 통합러시아당에 반대하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고 보도했다. 언론이 철저히 통제되고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러시아에서 폭동은 유혈로 끝난다”고 겁주던 분위기와는 대조적이었다.

반푸틴 집회를 허가하고 관영방송이 ‘균형’ 있게 보도한 것은 이미 인터넷 등으로 널리 알려져 시위 자체를 막기 어려웠다고 판단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또 일부 TV 기자가 직접 시위에 참가하는 등 방송 종사자들이 시위대에 동조한 것도 한 요인으로 꼽혔다.

AFP통신은 특히 야당 인사들의 말을 인용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반푸틴 방송을 허락하고 경찰한테도 시위대에 ‘부드럽게’ 대응하도록 했다고 11일 보도했다. 이는 푸틴 총리가 8일 “법을 어기는 시위에 대해서는 엄정 대처하겠다”고 한 발언과는 차이가 있다. 대권 승계 및 총선 파문 대응 과정에서 두 사람의 견해차가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이날 모스크바 외에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약 1만 명, 시베리아의 중심인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영하 20도의 혹한에도 5000여 명이 모여 반푸틴 시위를 벌였다. 해외에서도 뉴욕 맨해튼 러시아 영사관 앞에서 200여 명이 모여 “푸틴, 부끄러운 줄 알라”고 외쳤으며 런던 홍콩 도쿄 밴쿠버 등 전 세계 10여 개 도시에서 러시아 교민들이 시위를 벌였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푸틴 집권 기간에 경제적 안정을 보상받는 대가로 정치적으로 묵종했으나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러시아를 덮치면서 기반이 허물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또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부패 순위가 143위로 나이지리아, 우간다와 비슷해질 정도로 집권층의 부패가 심각한 것도 푸틴의 대통령 복귀의 길을 시위로 얼룩지게 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4일 총선 이래 반푸틴 기류가 연일 거세지고 있지만 러시아가 혹한기로 접어들어 시위 확산세가 주춤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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