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치매 할머니 대처’ 전기영화 시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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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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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초 개봉 예정 메릴 스트리프 주연 ‘철의 여인’…‘외로운 노파’ 묘사에 친지들 “좌파의 판타지” 반발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의 모습(왼쪽)과 ‘철의 여인’에서 대처 전 총리 역을 맡은 미국 영화배우 메릴 스트리프. 사진출처 데일리메일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의 모습(왼쪽)과 ‘철의 여인’에서 대처 전 총리 역을 맡은 미국 영화배우 메릴 스트리프. 사진출처 데일리메일
‘구부정한 80대 할머니가 길모퉁이 가게에 들어가 우유를 산다. 요즘 물가가 왜 이렇게 많이 올랐냐며 놀라워한다. 경호원들은 그녀가 말없이 사라진 것에 초조해한다. 집에 돌아온 노파는 남편에게 말을 건넨다. 하지만 남편은 이미 몇 년 전에 죽었다. 그녀는 상상 속의 인물과 대화를 하고 있을 뿐이다.’

이 할머니는 20세기 후반부를 풍미한 영국의 전 총리 마거릿 대처(86). 내년 초 개봉하는 대처의 전기영화 ‘철의 여인(The Iron Lady·감독 필리다 로이드)’의 한 장면이다. 영화에서 대처 전 총리를 연기한 미국 여배우 메릴 스트리프(62)은 14일 런던에서 프로모션 행사를 열었다. 벌써부터 내년 오스카상을 예약했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영화가 우파의 우상인 대처 전 총리를 깎아내리기 위해 노년의 병고(病苦)를 과장하고 희화화했다는 반발도 제기된다. 영화 내용에 문제가 있는지를 떠나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에 이어 20세기 후반부를 풍미한 또 한 명의 보수파 지도자가 치매로 힘겨운 노년을 보내는 모습이 많은 이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 치매로 공식 석상에 모습 안 드러내


대처 전 총리가 치매를 앓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딸 캐럴 씨는 2008년 자신의 회고록에서 “어머니가 2000년부터 기억력이 나빠지기 시작했으며 2003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소식을 나에게 계속 물어왔다”고 밝혔다. 또 보스니아 전쟁과 포클랜드 전쟁을 계속 혼동하는가 하면 치매가 심할 때는 문장 하나를 제대로 말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건강이 악화되면서 대처 전 총리는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올봄 윌리엄 왕세손 결혼식에도 초대를 받았지만 참석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달 86세 생일을 맞아 아들 마크 대처 부부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저택을 나서는 장면이 언론에 공개됐다. 당시 파란색 정장을 입고 있던 대처 전 총리는 얼굴에 미소를 띠는 등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 ‘좌파의 판타지’ 논란


영화 ‘철의 여인’은 대처 전 총리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11년간의 재임 시절(1979∼1990년), 퇴임 후 최근의 삶까지 일대기의 대부분을 다뤘다. 생존인물에 대한 영화 치고는 주인공의 업적과 사생활 등 묘사가 매우 구체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특히 포클랜드 전쟁이나 탄광노조 파업 등의 현안을 강한 결단력으로 헤쳐 나가는 모습이 회고 형식을 통해 밀도 있게 전개된다.

하지만 대처 전 총리가 퇴임 후 치매에 걸려 과거를 회상한다는 영화의 설정이 그녀를 희화화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도 거세다. 또 미국인인 데다 진보진영 배우로 유명한 메릴 스트리프가 영국 보수당의 상징인 대처 전 총리를 연기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처 전 총리의 친지들은 이 영화가 ‘좌파의 판타지’에 불과하다며 “그녀가 아직 살아있는데 영화를 극장에 거는 것은 모욕”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메릴 스트리프는 “대처를 연기한 것은 매우 큰 영광”이라며 “아직도 그녀의 여러 정책에 동의하지 않지만 대처가 시류에 영합하는 다른 정치인과 달리 정직한 확신을 갖고 정치를 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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