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연쇄 테러]생존자 증언으로 재구성한 ‘우퇴위아 섬 참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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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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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청사 폭탄 터뜨려 7명 살해… 섬으로 가 청소년 86명 학살

살려달라 비는 소년에게 총 겨눠 23일 노르웨이 우퇴위아 섬 물가에서 한 캠프 참가자(흰색 동그라미)가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는 테러범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붉은색 동그라미)를 향해 살려달라며 빌고 있다. 사진 출처 데일리메일
살려달라 비는 소년에게 총 겨눠 23일 노르웨이 우퇴위아 섬 물가에서 한 캠프 참가자(흰색 동그라미)가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는 테러범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붉은색 동그라미)를 향해 살려달라며 빌고 있다. 사진 출처 데일리메일
22일 오후 4시 50분경 우퇴위아 섬 입구에 건장한 체격의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나타났다. 오슬로 정부청사에서 자동차 폭탄테러가 발생한 지 1시간 반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경찰관 복장을 한 그는 캠프 경비 시멘 모르텐센 씨에게 경찰관 신분증을 보인 뒤 “오슬로에서 발생한 테러 때문에 보안 문제를 검사하기 위해 파견됐다”고 말했다.

캠프장으로 바로 향한 그는 캠프 주변 곳곳에 흩어져 활동하고 있던 청소년들에게 손짓을 하며 “오슬로 테러 문제 때문에 할 얘기가 있으니 잠시 모여 달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경찰관 복장에 안심한 사람들은 그의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더 가까이 밀집해 달라”고까지 말했다.

잠시 후 브레이비크는 가져온 가방에서 자동소총을 꺼내 청소년들을 향해 무차별로 난사하기 시작했다.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먼저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뒤쪽에 서 있던 청소년들은 비명을 지르며 숲 속으로 도망가거나 인근 건물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일부는 물가로 달려가 뛰어들었다. 생존자 엘리세 양(15)은 “범인이 서 있던 바위 뒤에 숨어 있었는데 그는 ‘숨어도 소용없어. 나는 경찰이야. 어서 나와’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말했다.

브레이비크는 총을 맞고 쓰러진 청소년들을 향해 확인 사살까지 했다. 목격자들은 “깜짝 놀란 사람들은 죽은 척하며 엎드려 있었지만 테러범은 총을 바꿔 쓰러진 사람들의 머리에 다시 총을 쐈다”고 말했다. 브레이비크는 침착한 모습으로 발견하는 사람마다 총을 쏘면서 물가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500m가량 떨어진 가까운 육지나 섬의 다른 쪽으로 헤엄쳐 가는 사람들을 조준 사격했다.

헤엄쳐 섬을 탈출한 한 소녀는 “그는 너무나 침착했다. 기괴할 정도였다”며 “확신에 찬 태도로 천천히 섬을 이동하면서 사람들이 보이는 족족 총을 쐈다”고 현지 방송에 말했다. 왼쪽 어깨에 총상을 입은 아드리안 프라콘 씨는 “범인이 ‘나치 영화’의 등장인물 같았다”고 말했다. 다행히 섬 안에 있는 작은 학교 건물에 숨어 있던 이들은 목숨을 건졌다.

참혹한 테러 와중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생존자들을 구출한 의인(義人)들이 있었다. 섬에서 약 2km 떨어진 스트로야 섬 여름 별장에 있던 카스페르 아일라우그 씨(53)는 길이 5.5m의 낚싯배를 타고 우퇴위아 섬에 들어가 해변으로 도망친 청소년들을 3번이나 육지를 오가며 구해냈다.

총기 난사가 시작된 지 30분이 지난 오후 5시 25분에 언론들은 총격에 관한 보도를 시작했다. 그러나 경찰 특별기동대(SWAT)는 헬리콥터를 구하지 못해 육로를 이용해 오후 5시 38분이나 돼서야 우퇴위아 섬으로 가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배마저 구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던 경찰은 결국 6시 20분이 돼서야 섬에 상륙했다. 경찰이 브레이비크를 체포한 것은 희대의 1인 학살극이 벌어진 지 1시간 30여 분이 지난 오후 6시 35분이었다. 당시 헬리콥터에서 촬영된 영상은 범인이 달아나는 청소년들을 쫓아 물을 향해 발사하는 장면을 담고 있어 경찰이 30분만 일찍 도착했더라도 희생자 중 상당수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오슬로·우퇴위아=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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