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오후 1시(현지 시간)경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의 대통령 관저. 프랑스군 헬기와 특수부대의 지원 속에 새벽부터 궁을 수색해온 반군이 로랑 그바그보 전 대통령이 은신해 있던 방으로 들어섰다. 흰색 속옷 차림에 초췌한 표정으로 책상 앞에 앉아 있던 그바그보는 “꼼짝 마”라고 외치는 반군에게 두 손을 들며 “죽이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옆에는 부인 시몬과 아들이 있었다. 》 반군 중 한 명이 손으로 그바그보를 때렸다. 이어 그바그보 가족은 4륜 구동 지프에 태워져 알라산 우아타라 대통령 당선자의 집무실과 내각이 있는 골프호텔로 옮겨졌다. 우아타라 당선자는 성명을 내고 “곧 그바그보에 대한 사법 절차에 착수할 것이고, 그의 신병이 안전하도록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코트디부아르에 새로운 민주주의가 시작된 만큼 국민은 평정을 찾고 무장한 민병대는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촉구했다.
그바그보와 부인 시몬은 코트디부아르 현대 정치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파리7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아비장대에서 고고학 강의를 하던 그바그보는 민주주의 강의를 하다 투옥돼 지식인에서 민주투사로 변신한다. 정치적 동지로 만나 후에 결혼한 시몬과 함께 1982년 좌파 인민전선당을 창당했지만 다당제를 허용하지 않은 정권의 탄압을 받아 1985년 파리로 망명했다. 1988년 복수정당제가 허용되자 귀국해 1990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18% 득표에 그쳤다. 2000년 10월 대선에 야당 후보로 출마해 정권교체에 성공하면서 40년간 계속된 일당 독재를 끝냈다. 그러나 그는 2005년 10월로 임기가 종료됐음에도 지난해 10월까지 6차례나 대선을 연기하며 정권을 유지해 왔다. 결국 지난해 12월 대선을 치렀지만 패배를 인정하지 않아 국가를 내전 속으로 몰아넣으며 자신의 종말을 앞당겼다.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자 미국 정부가 보스턴대 교수직을 제안했지만 이를 뿌리쳤다.
부인 시몬 역시 좌파운동권으로 수차례 투옥됐다. 그바그보와는 1989년에 결혼했으며 1995년 아비장의 아보보 지역구 의원으로 선출됐다. 18남매 가정에서 태어나 노동자의 권리와 에이즈, 빈곤 퇴치를 위한 시민사회운동에 투신하며 ‘철의 여인’으로 주목받았다.
좌파운동가였던 이 부부는 2000년 집권 후 야당 탄압과 보복에 나섰다. 특히 시몬은 ‘여성 대통령’으로까지 불리며 국정 전반에 관여했고 반대파 제거를 위한 비밀조직을 결성하는 등 공포정치를 주도했다. 대선 결과를 뒤집고 남편의 집권 연장을 종용한 것도 시몬이었으며 내전이 터지자 우아타라 당선자를 ‘도적두목’,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악마’로 표현하면서 전면에 나섰다. 이날 관저에서 체포돼 남편과 함께 골프호텔로 이송되는 시몬에게 우아타라 측 인사들이 몰려 일부 군중이 “마녀”라고 외치며 때리려고 하자 유엔 경찰과 반군이 저지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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