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에 넘어진 차량에서 기름 빼내가”…日 ‘지진범죄’ 골머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23일 16시 41분


코멘트
도카이(東海)대지진이 발생한 뒤 일본 언론과 외신들은 재난 속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하는 일본인의 질서 의식을 극찬했지만 한편에선 지진을 악용한 각종 범죄들이 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일본에선 지진 이재민을 돕는데 쓰인다며 기부금을 보내달라는 보이스피싱 사기 전화와 e메일이 확산 중이다. TBS 등 일본 언론은 공식기관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이 같은 전화와 e메일에 속지 말 것을 시민들에게 당부했다.

피해 지역에선 상점 약탈, 차량 절도 등 범죄 행위도 잇따르고 있다. 사람들이 상점에서 물건을 훔쳐 가는 장면이 TV 방송 취재진의 카메라에 포착돼 방영되기도 했다. 특히 관리자가 따로 없는 무인 편의점이나 현금자동지급기(ATM)의 피해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산케이신문은 미야기(宮城)현의 재난 현장을 취재하던 중 '자원봉사'를 사칭해 이 지역에 들어간 뒤 쓰나미에 휩쓸려 넘어진 차량에서 휘발유를 훔치는 남성을 직접 취재한 내용을 기사로 게재하기도 했다.

이 남성은 피해 차량의 연료탱크에 구멍까지 뚫고 휘발유를 담다가 취재진에게 적발돼 경찰의 주의를 받고 자리를 떴다고 신문은 전했다. 남성은 경찰에 "다른 지역에서 자원봉사를 하러 왔다"고 밝혔으며 이 남성이 탑승한 차량엔 실제로 '지진 지원'이라는 스티커가 부착돼 있었다고 한다.

피해가 심각한 지역 가운데 하나인 미나미산리쿠쵸(南三陸町)의 한 주차장에선 재난으로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누군가가 차량 10여대의 유리를 깬 뒤 금품을 훔쳐간 사건도 발생했다. 피난 생활 와중에도 주민들은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자체적으로 돌아가며 경비를 하는 실정이다.

기름 부족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이바라키(茨城)현 등 피해 지역 주유소에선 먼저 기름을 확보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새치기, 폭언, 폭력 등이 난무한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도 나왔다. 무리하게 새치기를 하려다 주유소 종업원이 차량에 치이는 사고도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 같은 '부끄러운' 상황이 언론을 통해 속속 드러나면서 일본 내에서도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일본의 유명 영화감독인 기타노 다케시는 19일 자신이 진행하는 TBS 정보프로그램 '정보 세븐데이즈 뉴스 캐스터'에서 재해 지역 범죄자들을 가리켜 "쏴 죽여도 된다"고 말했다.

기타노 다케시는 무인 편의점 등에서 잇따라 발생 중인 절도 소식과 관련해 "일본인은 언제부터 이렇게 얼간이가 됐냐"며 "시신에서 뭔가를 가져가고 빈집에 들어가는 저런 것들은 쏴 죽여도 된다"고 밝혔다. 방송을 본 일본 누리꾼들도 "말 잘 했다" "저런 도둑들은 일본의 수치" 등 그의 의견에 동조하며 재난을 악용한 범죄자들을 비난하고 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