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판례변경… 노사관계 파장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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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장에 막대한 손해 안끼쳤다면 불법파업도 업무방해로 처벌 못해”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 파업이라도 사용자가 예측하지 못한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뤄지고 막대한 손해를 끼쳤을 때에만 업무방해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불법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파업은 원칙적으로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는 기존의 대법원 판례를 변경한 것으로 앞으로 불법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기준을 둘러싸고 검찰과 노동계 간의 갈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2006년 3월 대규모 철도노조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김영훈 전 철도노조 위원장(43·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에게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17일 확정했다.

대법원은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며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뤄져 사용자의 사업 운영에 심각한 혼란과 막대한 손해를 초래할 때만 집단적 노무 제공 거부가 ‘위력’에 해당돼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같은 법리에 비춰볼 때 김 씨가 주도한 파업은 ‘위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어 유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지금까지 대법원은 “모든 파업은 원칙적으로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을 갖추고 있으며 정당한 절차를 거친 파업은 실질적으로 위법이라고 볼 수 없어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결해 왔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4월 “모든 파업을 원칙적으로 범죄로 보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을 지나치게 축소시킨 법률 적용”이라며 불법 파업만 처벌해야 한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놓았다.

17일 대법원이 내놓은 판결은 헌재 결정보다 한발 더 나아갔다. 불법 파업이라 하더라도 모두 처벌할 수는 없고 ‘전격적 파업’과 ‘막대한 손해’라는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 특히 박시환 김지형 이홍훈 전수안 이인복 대법관은 “(기물을 파손하거나 사업장을 점거하는 등) 적극적인 방해 행위가 없는 단순 파업은 업무방해죄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소수의견을 내놓았다.

이날 대법원 판결에 대해 검찰 내에서는 “불법파업 처벌 요건이 모호해 앞으로 사례별로 판례가 축적되기까지 검찰과 노동계가 법 해석을 놓고 다투는 사례가 많아져 혼란이 예상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막대한 손해는 얼마인지, 전격적인 파업은 어느 정도의 예측가능성을 뜻하는 것인지를 놓고 법적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것.

김 전 위원장은 2006년 2월 한국철도공사와 단체교섭 최종협상이 결렬되자 중앙노동위원회가 중재회부 결정을 내려 쟁의행위가 금지됐음에도 불구하고 3월 1일 새벽 노조원들에게 총파업을 지시했다. 이 때문에 나흘간 철도노조원 1만3000여 명이 결근해 열차 운행이 중단됐고 철도공사는 135억 원의 재산 피해를 봤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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