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日本 대지진]센다이 동북조선학교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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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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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위기 총련학교 “우린 한민족… 이념 떠나 도움을”

대지진으로 아수라장이 된 채 방치된 센다이 시 ‘동북 조선 초중급학교’ 교무실. 직원들은 학교에 피난 온 사람들을 돌보느라 정리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센다이=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대지진으로 아수라장이 된 채 방치된 센다이 시 ‘동북 조선 초중급학교’ 교무실. 직원들은 학교에 피난 온 사람들을 돌보느라 정리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센다이=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16일 일본 센다이(仙臺) 시 다이하쿠(太白) 구 야기야마(八木山) 정상 부근에는 눈이 흩뿌렸다. 그 사이로 낡고 허름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녹슨 교문엔 한글로 ‘동북 조선 초중급학교’라고 적혀 있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벽에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걸려 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계인 이 학교는 1965년 문을 열었다. 올해는 초등학교 18명, 중학교 12명이 다니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수업이 중단된 상태다. 11일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건물 곳곳이 부서지고 깨졌다.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 교육동 건물 벽엔 금이 갔고 땅은 갈라져 있었다. 내부 상황은 더 처참했다. 교무실 벽은 무너졌고 유리창은 온전한 게 없었다. 건물 바닥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한쪽 면으로 심하게 기울었다.

이 학교에서 과학 과목을 맡고 있는 현유철 교무주임은 대지진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오후 2시 46분경부터 5분 넘게 건물이 요동쳤어요. 교실 전체가 심하게 흔들려 서 있기조차 힘들었죠. 급히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장으로 피신해 부상자는 없었지만 생전 처음 겪는 공포였죠.”

조선학교 시설은 기숙사를 제외하고 모두 40년이 넘은 노후한 건물이다. 지진의 충격으로 건물 2동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태다. 21일까지 임시 휴교를 했다. 교육동 대신 기숙사에서 수업을 해야 한다. 25일로 예정된 졸업식도 열기 어렵다.

이날까지도 조선학교는 가스와 수도가 끊긴 상태였다. 교직원들은 식당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현 주임은 “휘발유가 없어 움직일 수가 없다. 매일 물을 얻으러 동포 집으로 걸어서 다녀오는 상황”이라며 생필품이 절대 부족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지진 피해를 본 지역 주민을 돕고 있다. 하루 식사를 두 끼로 줄여 인근 아키야마(秋山) 초중학교와 시민센터에 주먹밥 500개를 전달했다. 홀몸노인과 지진피해주민 등 30여 명을 조건 없이 맞아들였다. 재일교포 안상조 씨(80)도 대지진 직후 집을 떠나 가족 5명과 함께 조선학교에 머물고 있다. 그는 “암 수술을 앞두고 피난소에 갈 수 없는 처지였는데 조선학교의 배려로 편한 보금자리를 얻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다. 총련 미야기 현 본부 이영식 위원장은 “일본이 (북한과의) 정치적 갈등 때문에 조선 학교를 차별하고 있다”며 “미야기 현에 긴급 탄원서를 제출한 상태”라고 전했다.

조선학교는 한국의 119 구조대가 일본을 돕기 위해 센다이를 찾은 사실을 반겼다. 그러면서 이념을 떠나 어려움에 빠진 동족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윤종철 교장은 “비록 지금은 어렵게 살림을 꾸리고 있지만 다시 일어설 것”이라며 “동포가 잘돼야 학생의 미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진홍 이사장은 기자가 명함을 건네자 “1936년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 사건은 민족 언론의 자부심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조선학교 관계자들은 학교 주변의 참상을 숨김없이 보여줬다. 학교를 재건하기 위해 도와달라는 말을 수차례 거듭했다.

센다이=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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