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반정부군의 퇴각 순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8일 16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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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숙여! 몸을 숙여!"

리비아의 원유 수출항 도시 라스 라누프에 자리한 파델 호텔에 묵고 있던 CNN 기자는 7일 오전 4시30분(현지시각)경 호텔 직원의 고함소리에 단잠에서 깨어나야 했다. 리비아 취재 수주만에 처음으로 달콤하게 하룻밤을 보내려던 기대가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호텔직원은 방마다 돌아다니며 즉시 떠나라고 소리쳤다. 투숙객은 모두 기자들.

CNN 기자는 서둘러 옷을 입고 가방을 챙긴 뒤 1층 로비로 내려갔다. 로비에 있던 반정부군 병사 한명은 기자에게 "카다피가 독가스를 사용하고 있다"고 했고, 다른 병사는 "(정부)군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말했다. 소문만 무성했고 '팩트'는 없는 상황이었다.

호텔 매니저는 "당신은 지금 당장 떠나야 한다"며 "라스 라누프는 안전하지 않다"고 했다.

로비에 비치된 TV채널은 아랍어 방송인 알-아라비야로 어느 샌가 맞춰져 있었다.
TV에는 정부군이 라스 라누프 주변지역에서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정부군이 4일 점령한 라스 라누프가 정부군 반격을 맞는 상황이었다. 반정부군은 라스 라누프시 장악에 이어 서쪽에 위치한 빈 자와드 타운도 차지한 상태였다.

반정부군은 그러나 수시간만에 뒤로 물러나야 했다. 정유시설 타운인 알-브레가에서 시작한 반정부군의 서진은 이렇게 멈춰서게 됐다. 그리고 전세는 정부군 우세 쪽으로 기우는 것처럼 보였다고 CNN 기자는 전했다.

반정부군은 픽업트럭들을 호텔로 몰고와 먹을거리 등을 챙겼다.

이런 어수선한 상황에서 CNN 기자는 이날 해가 질 때까지 머물다가 마지막으로 일부 다른 기자들과 호텔을 떠났다. 숙박료도 지불하지 않고 방 열쇠도 반납하지도 않은 채였다.

5일부터 라스 라누프에 머물고 있다는 미국 일간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 기자 댄 머피.

머피 기자는 4일 반정부군이 싸움도 없이 점령한 빈 자와드 타운은 이틀만인 6일 정부군에 넘어갔다며 정부군이 이날 종일 헬기와 박격포, 로켓 추진 수류탄 발사기 등을 동원해 반 자와드 타운에 있던 반정부군을 공격, 이들을 라스 라누프로 내몰았다고 전했다.

그는 이날 동이 튼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반 자와드 타운에서 6마일쯤 떨어진 곳에서 정부군 소부대가 목격됐다고 덧붙였다.

정부군은 같은 날 오후 4시경 라스 라누프의 원유시설도 공급한 것으로 전해져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반정부군을 더욱 혼돈에 빠지게 했다.

자신이 묵고 있던 호텔에서 다른 기자들과 함께 피신하지 못한 머피 기자는, 호텔을 떠났던 한 미국인 TV 기자단이 얼마 지나지 않아 되돌아와 그들과 함께 검문소들을 돌아다니며 취재했다. 오후 3~4시경 떠나간 기자들이 대부분 라스 라누프로 되돌아왔다.

머피 기자는 5일 라스 라누프 외곽에서 빈 미니밴을 타게 됐다고 한다. 반정부군 편인 미니밴 운전사는 반정부군이 라스 라누프에서 계속 서진할 것이고 수도 트리폴리에서 다음날(6일) 아침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까지 나타냈다.

그러나 미니밴 운전사의 이러한 기대는 몇 마일 서쪽에서 한 운전자가 반대방향으로 달려오면서 정부군의 전투기가 보였다는 고함소리와 함께 물거품이 됐다고 머피 기자는 전했다.

라스 라누프에 대한 정부군의 6일 공습과정에서 민간인 차량 한대가 피격해 최소한 어린이 2명이 숨졌다고 영국 일간 더 타임스 인터넷판이 7일 전했다.

또 반정부군은 정부군 공습에 맞서 정부군의 전투기 3대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벵가지의 한 육군기지에 있는 반정부군측 소장 아흐메드 알-기트리아니는 열정은 있으나 경험이 부족한 젊은 전사들이 빈 자와드에서 격퇴당했다면서 트리폴리를 향한 반정부군의 서진 전투는 지금까지 젊은이들이 주축이 돼 치러졌고 군 고문들은 무기에 관해 그들을 훈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재 외국 용병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1500명 규모의 정예 카다피군을 카다피의 고향인 시르테 방어의 최전선에 배치돼 있다면서 반정부군은 트리폴리로 가기 위해 거쳐야할 핵심 타운인 시르테 진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알-기트리아니는 시르테 내에도 최소 2개의 친정부 여단병력이 있다면서 자신은 현재 젊은 반정부 병력에게 일단 기다릴 것을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젊은이들이 오래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잘 무장하고 전열을 갖춘 채 진격에 나설 것이다"고 밝혔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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