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의 성지’ 타흐리르 광장, ‘축제의 장’으로 탈바꿈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8일 14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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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시 낭송, 춤, 구호, 토론에 결혼식까지….

이집트 반정부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민주화의 '성지' 카이로 타흐리르(아랍어로 '해방') 광장이 분노와 투쟁을 넘어 이름에 걸맞게 축제와 해방의 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7일(현지시각) 타흐리르 광장 입구에서는 시위대가 양쪽으로 늘어서서 이집트 전통결혼식 행진의 구호 박자에 맞춰 "우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치며 들어서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광장에서는 시위 참가자들이 다양한 즉석 공연을 벌이는가 하면 등 수십 년만에 처음 맛보는 해방감을 한껏 즐기는 모습이다.

한쪽에서 청년 파디 미카엘(29)이 아랍식 현악기인 우드를 연주하며 "우리는 침묵하지 않을 거야! 목소리를 높여!"라고 노래하자 젊은 남녀들이 박수치고 환호하며 후렴을 합창한다.

다른 즉석 무대에서는 한 중년 남성이 운율에 맞춰 아랍권의 인기 오락인 시 낭송을 하고 청중이 박수로 운율을 맞춰주고 있다.

때때로 군중 중 누군가가 무바라크 반대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면 수백 명이 박수치며 따라 외치고, 구호 장단에 맞춰 남자들이 벨리댄스를 추기도 한다.

잡상인들이 차, 과자, 주스, 대추 등을 파는 옆에서는 젊은 남녀들이 둥글게 모여 정국과 하루의 일과를 논의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시위가 시작되기 전만하더라도 국민들이 정치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꿈도 못 꿨다고 광장의 사람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번역 일을 하는 기독교인 청년 나샤트 크로스(28)는 "우리는 여기서 이견을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배우고 있다"며 "이런 교양 있는 토론 문화는 참으로 감탄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아흐메드 자판(29)과 올라 압델 하미드(22·여) 커플의 경우 이날 아예 시위대를 하객 삼아 광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의 성혼선언문이 낭독되자 신랑과 신부를 둘러싼 시위대 수천 명이 일제히 환호하며 소리 지르고 휘파람을 불어 이들의 앞날을 축복했고, 이들도 '하객'에게 꽃과 샤베트를 돌려 답례했다.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신부 하미드는 "이집트 국민 수백만 명과 함께 이렇게 끈끈한 사랑과 애국심의 결속을 이룬 뒤에 우리가 광장을 떠나기는 어려웠다"며 "광장을 떠나 외딴 홀에서 결혼식을 열거나 이 광장에서 시위자들 사이에서 식을 올리거나 둘 중 하나였다.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심리학자인 신랑 자판은 "시위대는 이제 가족이다. 우리는 지난주 이 광장에서 함께 살고 웃고 시위를 벌였다. 우리는 행복을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다"며 "우리가 계속 항의하면서도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세계가 알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축제 분위기 와중에서도 이집트 경찰 당국의 보복 가능성에 대한 공포는 여전하다.

최근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과 아흐메드 샤피크 총리가 시위 참가자를 처벌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시위대는 이들의 발표를 불신하고 있다.

광장의 시위대가 검문소와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지난주 자신들을 공격한 친(親)무바라크 시위대의 광장 진입을 막고 있지만 사복 차림의 정보요원들이 침투해 시위대 색출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

실제로 카림이라는 이름의 한 시위 참가자가 3일 광장을 떠난 직후 통행금지령을 어기고 휴대전화로 시위장면 사진을 촬영했다는 이유로 붙잡혀 밤새 정보부 요원 등의 심문을 받기도 하는 등 공안 당국의 시위 참가자 단속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집트 군 검찰이 최근 경찰 병력 철수에 따른 혼란 사태의 책임을 물어 하비브 엘 아들리 전 이집트 내무장관을 기소할 방침이라고 공안 당국 소식통이 이날 밝혔다.

아들리 전 장관은 지난달 28일 경찰 병력을 거리에서 돌연 철수시켜 수 일간 약탈과 탈옥 등 무법 상태를 야기하고 시위대를 상대로 실탄 사격 명령을 내린 혐의를 받고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시위 후 임명한 신 내각은 또 아흐메드 엘 마그라비 전 주택장관을 공금 유용 및 국유지 불법취득 혐의로 기소하는 등 전 내각 소속 장관 등의 부패 혐의에 대한 수사를 서두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당국은 무바라크의 아들 가말의 최측근 인사인 아흐메드 에즈, 라치드 모하메드 라치드 전 통상산업장관, 조하이르 가라나 전 관광장관 등에 대해 출국금지 및 은행계좌 동결 등의 조치를 취하고 조사 중이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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