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경제회복 자신감 상실… 현금 깔고 앉아 재투자 꺼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28일 03시 00분


“美실업률 왜 안 떨어지나” 전문가 3인 진단


25일 국정연설을 앞두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여러 차례 경제담당 장관과 참모들을 모아 놓고 회의를 했다. 회의의 화두는 단연 실업문제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내가 흥분할 만한 ‘충격적인’ 대책을 내놓아 보라”고 여러 차례 독려했지만 어느 누구도 눈에 띄는 대책을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은 신년 국정연설에서 딱 부러지는 실업대책을 내놓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경제가 최악의 상황을 극복했다고는 하지만 9% 이상의 고실업률은 20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고 1400만 명의 미국인이 ‘실업자’ 딱지를 달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년 동안 일자리 문제라는 숙제를 풀기 위해 진보건 보수건, 재계건 노동계건 가리지 않고 만나왔다. 어떨 때는 점심도 거른 채 토론 삼매경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왜 실업문제는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까.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대니 라이프치거 조지워싱턴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확신 부족과 자신감 상실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라이프치거 교수는 “미국 경기침체의 특성을 꼽자면 주식시장, 주택시장을 포함한 모든 실물시장이 이른 시일 내에 정상을 회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confidence)을 상실한 것”이라며 “미국 기업들은 현금을 깔고 앉아 재투자를 꺼렸고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데 소극적이었다”고 분석했다.

서배스천 맬러비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12월 고용동향에서 실업률은 9.4%로 전달의 9.8%보다 0.4%포인트 하락했지만 실업문제는 통계에 잡히는 숫자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풀타임 자리를 찾고 있지만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사람이나 실업이 장기화되면서 구직을 포기한 인구까지 합치면 17%는 족히 될 것”이라며 “미국 인구 6명당 1명이 실업자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맬러비 연구원은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연설에도 실망감을 표시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 국정연설의 초점은 일자리 창출이라기보다는 경쟁력 강화였다고 규정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며 “그나마 장기적인 대책을 설명하다 보니 구체성이 결여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탈출구는 있을까. 피터슨경제연구소의 제프리 쇼트 선임연구원은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회복이 더딘 것이 문제”라며 “최소한 내년까지 8∼9%대의 실업률이 유지될 것이며 5∼6%대로의 진입엔 수년(several years)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라이프치거 교수도 “경제 회복 주기에서 실업문제 회복이 맨 나중에 오는 것을 감안할 때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며 “아무리 빨라도 2012년 말 정도가 돼야 실업률이 7∼8%로 낮아질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12월 추가협상을 마치고 양국 의회비준을 기다리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발효가 미국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맬러비 연구원은 “미국 내 투자가나 재계 지도자들에게 자유무역을 지지한다는 명백한 신호를 보낸 것은 경제 회복 및 일자리 회복에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국정연설에서 “최소 7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며 “수출이 늘어나면 일자리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FTA 등을 확대해 2014년까지 수출규모를 두 배로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또 전문가들은 임기 3년차를 맞아 단행한 오바마 경제팀 재정비는 임기 후반 행정부의 목표가 일자리 창출에 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쇼트 연구원은 “오바마 대통령 출범 이후 2년간은 최악의 경기침체 극복이라는 위기관리가 주요 목표였다면 이제는 실업 극복과 일자리 만들기 단계로 옮겨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프치거 교수는 “래리 서머스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을 정점으로 하는 백악관 경제팀이 실업문제와 관련해 정확한 판단과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은 실책”이라며 “2009년 10%대로 진입한 실업률이 빠른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본 것은 판단 착오”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최근 기사에서 백악관 경제팀의 갈등을 소개하며 “익명을 요구한 한 백악관 경제당국자는 서머스 경제위원장에 대해 ‘창조적인 정책을 내놓으려 하기보다는 회의석상에서 상대방의 오류를 지적하는 데만 골몰했던 지적 강압자(bully)’라고 혹평했다”고 전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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