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영토분쟁]러 대통령, 쿠릴 전격방문… 북방영토 주장해온 日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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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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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1일 아침 일본과 영토분쟁 지역인 쿠릴열도 남단 4개 섬(일본의 북방영토) 중 하나인 쿠나시르(일본명 구나시리·國後)를 전격 방문했다. 이에 일본은 주일 러시아대사를 불러 강력히 항의했으나 러시아는 “러시아 땅을 방문한 것”이라며 맞서 양국 관계가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 이로써 일본은 중국과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에 이어 러시아와도 영토분쟁에 휩싸였다. 마치 중국과 러시아가 각각 일본의 최남단과 최북단에서 협공하는 모양새다. 》
○ 메드베데프 방문에 일본 충격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현지 시간) 전용기로 사할린 주의 주도인 유즈노사할린스크의 공항에 도착한 뒤 소형기로 갈아타고 쿠나시르를 방문했다. 러시아의 국가원수가 쿠릴 열도를 방문한 것은 옛 소련시대를 포함해 이번이 처음이다. 홋카이도(北海道) 동북쪽으로 16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섬은 이투루프(일본명 에토로후·擇捉) 시코탄(色丹) 하보마이(齒舞)와 함께 일본이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섬이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북방영토 반환에 집념을 보여 왔다. 정부청사가 몰려있는 도쿄 가스미가세키(霞が關)의 한복판에 놓인 비석에는 “북방영토가 돌아오는 날, 평화의 날…”이라는 글이 쓰여 있을 정도다. 또 일본 내각부 산하에 ‘북방대책본부’를 특별기구로 두고 주요 대신 중 한 명이 ‘북방영토담당상’을 맡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 정부는 러시아 대통령의 기습 방문에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이날 “북방영토가 일본 고유 영토라는 입장은 일관된 것으로 그 지역에 러시아 대통령이 왔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외교 강경파인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외상도 미하일 벨르이 주일 러시아대사를 불러 “북방영토 방문은 일본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이라며 항의했다.

이에 대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이곳은 우리 땅이고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영토를 방문한 것”이라며 “일본의 반발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주러 일본대사를 소환하겠다고 맞섰다.

○ 일본의 집요한 쿠릴 열도 반환 요구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북방 4개 섬’은 패전 후 1945년 8월 28일 옛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소련 영토로 편입됐다. 하지만 일본은 전통적으로 홋카이도가 관할하던 행정구역이고 19세기 말 일본인의 손으로 개발된 곳이라는 이유를 들어 집요하게 반환을 요구해왔다. 섬 반환을 둘러싼 협상은 순조로운 듯했다. 1956년 일소 양국이 공동선언에서 “두 나라가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2개 섬(시코탄, 하보마이)을 양도한다”고 약속한 바 있고, 1993년에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일본 총리가 ‘도쿄선언’에서 귀속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한다는 절차에 합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이 지속적으로 4개 섬 모두를 돌려줄 것을 요구하면서 상황은 꼬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일본 내각이 ‘북방영토를 러시아가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의결하고, 마에하라 외상이 줄곧 “러시아는 북방영토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강조해 러시아의 신경을 건드렸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쿠릴 열도 4개 섬에 대한 영유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실제 러시아는 내년 말 하원의원 선거, 2012년에는 대통령 선거 등 ‘정치의 계절’을 앞두고 있어 국민에게 ‘강한 러시아’를 부각시켜야 할 필요도 있다.

○ 꺼지지 않은 불 센카쿠

9월 7일 센카쿠 열도 부근에서 중국 어선과 일본 해양순시선의 충돌 사건으로 촉발된 센카쿠 사태 여파도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 국회는 1일 국회에서 중국 어선과의 충돌 장면이 담긴 비디오 화면을 공개했다. 이에 일본 의원들은 “중국 어선이 도주하기 위해 해양순시선을 들이받은 명백한 범죄행위”라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날 홋카이도에서는 러시아 대통령의 북방영토 방문을 거세게 항의하는 집회가 잇따랐다. 국회 내에서도 “러시아와 영토분쟁에 휘말린 것은 센카쿠 사태에서 현 정부가 만만하게 보였기 때문”이라는 노골적인 불만도 나왔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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