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격]<6>대한민국 브랜드 가치를 높이자 〈끝〉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5일 22시 18분


코멘트

‘순수한’ 뉴질랜드… ‘글로벌’ 스위스… 한국의 이미지는?

지난해 7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는 동성애자와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적 소수자들을 위한 축제 '월드 아웃게임스(World Outgames) 2009'가 열렸다. 9일 동안 치러진 이 행사에는 세계 100여 개국 대표들과 관광객, 시민 등 20여만 명이 몰렸다.
한국에서 열렸다면 찬반 논쟁으로 시끄러웠을 월드 아웃게임스를 코펜하겐은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코펜하겐 지역 관광청인 '원더풀 코펜하겐' 관계자들은 이 행사를 유치하기 위해 캐나다 몬트리올까지 날아가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원더풀 코펜하겐'의 베른하르겐 요한센대표는 "성적 소수자를 위한 세계적인 축제를 개최함으로써 덴마크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도시라는 것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경제적, 군사적으로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하지만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주력해 좋은 이미지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특히 스위스, 덴마크, 뉴질랜드는 일찍이 국가 마케팅 제고에 눈을 떠 브랜드 가치를 높인 대표적인 브랜드 강국(强國)들이다.

●국제행사 유치해 국가브랜드 알리는 덴마크
브랜드 강소국 덴마크
국제행사 유치 전담기구 운영… 코펜하겐은 1년내내 ‘행사중’

원더풀 코펜하겐의 마케팅 디렉터인 마리앤느 스캐스터와의 인터뷰는 금요일인 지난달 22일 오후 3시15분에 잡혔다. 인터뷰를 위해 코펜하겐 시내에 있는 원더풀 코펜하겐으로 들어서자 불이 꺼진 사무실이 많았다. 북유럽에서 금요일 오후는 주 6일 근무시절 우리나라의 토요일 오후처럼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이다.
그는 다른 시간은 일정이 꽉 차서 힘들다며 금요일 오후로 인터뷰를 잡았다. "고맙다"는 인사말에 그는 "한국에서 온 유력 일간지 기자와의 인터뷰는 한국에 덴마크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하며 웃었다. 유럽 변방에 있는 인구 50여만 명의 작은 도시 코펜하겐이 국제 행사의 단골 개최지로 부상한 데는 덴마크를 알리겠다는 이런 열정이 있어서 가능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 행사는 149건에 이른다. 규모가 작은 행사도 통상 3일 이상은 진행하기 때문에 코펜하겐에선 1년 내내 각종 국제 행사가 끊이지 않고 열린 셈이다.
원더풀 코펜하겐 안에는 이런 국제 행사를 유치하는 전담 조직이 있다. '덴마크에서 만나요'라는 뜻의 'Meet Denmark'다. 덴마크가 언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하는 소규모 행사까지 전담 조직을 동원해 유치하려는 것은 행사 개최로 인한 경제적 파급 효과와 함께 덴마크를 알리기에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더라도 국제 행사에 참가할 정도면 참가자가 속한 커뮤니티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덴마크에 호감을 갖고 돌아가면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오고 싶어 할 것입니다."(울리카 마텐슨 원더풀 코펜하겐 공보 담당자)
덴마크는 2006년 국가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해 세계화 전략 및 액션플랜을 여야 정치권의 합의로 채택했다. 국가 브랜드 마케팅을 위해 115억 덴마크 크로나(약 247억 원) 규모의 '덴마크 마케팅 펀드'를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알프스를 넘어 '스위스적인' 것을 알리는 스위스
‘요들송의 나라’ 탈피 스위스
마케팅 독립기구 2001년 설립… 친환경-현대적 이미지 홍보


스위스 관광청은 취리히 시내의 한적한 주택가에 있었다. 빨간색 바탕에 흰색 십자가가 그려진 스위스 국기 6개가 걸려 있지 않았다면 '관광 대국' 스위스의 관광 행정을 총괄하는 건물이라는 것을 알기가 힘들 정도로 평범한 건물이었다.
스위스 관광청의 주된 역할은 더 많은 관광객이 스위스를 찾게 하는 것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스위스 관광객들에게 'Swissness(스위스적인 것)'를 알리는 것 또한 스위스 관광청에서 하는 일이다. 스위스에 오는 관광객들이 알프스 산맥만 보지 말고 스위스의 창조적이고 현대적인 면을 느끼고 갈 수 있도록 관광 코스를 개발하는 것이 스위스 관광청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관광객이 그 나라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오랜 기간 뚜렷하게 각인 됩니다. 국가 이미지는 관광뿐만 아니라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스위스 관광객들에게 우리의 현재 모습을 알리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울스 에베하르드 스위스 관광청 부청장)
스위스는 알프스와 요들송이라는 구태의연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가 마케팅을 전담하는 독립 기구를 2001년 만들었다. 스위스의 현재를 알리자는 뜻에서 기구 이름도 '현재의 스위스(Presence of Switzerland)'로 지었다.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 있는 '현재의 스위스'는 일반 국민을 상대로 스위스를 알리는 것이 아니고 특정 국가의 '오피니언 리더'를 대상으로 국가 마케팅을 전개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미국, 영국, 독일,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호주 등 강대국의 오피니언 리더가 이들의 마케팅 대상이다. 외국의 유력 정치인들이나 기업인, 언론인 등을 스위스로 초청해서 '스위스의 현재' 모습을 알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현재의 스위스' 대표인 톨스타인 안드레아센은 "현재의 스위스를 알리는데 파급효과가 가장 큰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케팅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초로 국가 마케팅 나선 뉴질랜드
국가마케팅 원조 뉴질랜드
시장조사로 외국인 기호 파악… 맞춤형 홍보프로그램 개발


뉴질랜드 정부는 1990년대 중반 설문 조사 등을 통해 뉴질랜드의 목가적인 이미지가 실제 관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카스 카터 뉴질랜드관광청 커뮤니케이션 총괄 매니저는 "뉴질랜드의 모든 장점을 중구난방으로 나열해 온 마케팅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정부는 관광청을 중심으로 다양한 부처와의 협업을 통해 국가 이미지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세계 여러 나라를 상대로 한 시장조사를 통해 외국인들의 기호를 파악했다. 홍보 슬로건 개발은 세계적 광고 전략사인 M&C사치(Saatchi)에 맡겼다. 이를 통해 1999년 '100% 순수(Pure) 뉴질랜드'라는 슬로건이 등장했다. 세계에서 처음 시도되는 국가 브랜드 마케팅이었다.
뉴질랜드 정부는 마케팅 첫해에만 약 4100만 뉴질랜드 달러(약 330억 원)를 글로벌 홍보에 투입했다. 뉴질랜드의 여행사, 음식점, 숙박업소와도 적극적으로 손을 잡고 이들이 '100% 순수'라는 슬로건과 로고를 활용하도록 이끌었다. 홍보 첫해에만 뉴질랜드를 찾은 외국인 수는 10%, 관광수입은 20%가 증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순수'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100% 순수 어드벤쳐' '100% 순수 서스펜스' 같은 슬로건도 등장했다. 시장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외국인들은 캠핑, 번지점프 같은 뉴질랜드의 활동적 프로그램에 큰 매력을 느낀다는 걸 파악했기 때문이다.
카스 카터 총괄매니저는 "뉴질랜드의 '순수' 마케팅은 지난해로 10주년을 맞았다"며 "뉴질랜드의 국가브랜드는 관광산업 뿐 아니라 뉴질랜드산 제품 수출과 유학생 증가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 한국 브랜드가치 높이려면
“정보기술 강국 이미지 장점… 세계 IT박람회 개최해볼만”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규모로는 세계 15위권이지만 국가 브랜드 순위는 그 보다 한참 아래다. 지난해 조사한 안홀트 국가 브랜드 지수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50개국 가운데 31위에 그쳤다. 한국이 경제력을 끌어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브랜드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국격'과도 관련이 있지만 한국이 세계에 잘못 알려지거나 덜 알려진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안홀트 국가 브랜드 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브랜드가 지나치게 저평가되는 원인은 는 국제사회 기여 미흡, 정치·사회적 불안, 북한과의 대치상황 등이 꼽혔다.
국내 PR 및 브랜드마케팅 전문가들은 정보기술(IT) 강국 이미지를 앞세우고 글로벌 기업을 육성해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켜야 국가 브랜드가 올라간다고 강조했다.
한국PR협회가 최근 PR 및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한국 국가브랜드가 가진 강점은 '정보기술(IT) 강국' '세계적인 기업' '경제 발전' 등이었다.
전문가들은 국가 브랜드를 키울 수 있는 기회 요인으로 IT기술력 증대와 지속적인 글로벌 기업 위상 강화, 한국 기업의 기술수준 향상 등을 지목했다. 또 현재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역량과 앞으로의 기회 요인 등을 종합해 볼 때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세계적인 IT박람회 개최'를 제안했다.
설문 조사를 주관한 한은경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삼성, LG,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기업은 해외에서 제품이나 서비스 외에도 다양한 사회봉사활동을 통해 한국에 대한 이미지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며 "국가브랜드 이미지 제고활동에서 정부는 기업이 추구하는 목적을 수용하는 범위에서 다양한 협력체계를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20021012|코펜하겐·취리히=황진영 기자buddy@donga.com

20062002|오클랜드=임우선기자 imsu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