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세 청년이 북한산 청바지 팔게 된 사연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11일 03시 00분


“교역으로 고립국 바꾸자” 사업 제안
평양방문 계약 체결 후 보드카 건배
고급백화점서 퇴출당한 뒤
임시매장서 25만원에 팔아

북한산 청바지가 지난해 12월 5일 스웨덴 백화점에서 처음으로 판매되려다 무산됐다. 스톡홀름 푸브 백화점 측이 “정치적 논란에 휩쓸리길 원치 않는다”며 매장 철수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본보 지난해 12월 7일자 A2면 참조 스웨덴 고급백화점서 팔려던 북한산 청바지 ‘Noko’ 판매개시 30분전 ‘퇴출’ 왜?

북한산 청바지 ‘노코(Noko)’는 스웨덴의 세 청년 야코브 올손(23), 토르 라우덴 켈스티옌(24), 야코브 아스트룀 씨(25)가 이뤄낸 사업이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인터넷판은 8일 ‘노코’의 탄생비화를 소개했다.

마케팅업체에서 일하던 이들은 2007년 7월 어느 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누구의 생각이랄 것도 없이 고립국가인 북한과 사업을 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들은 다음 날 바로 북한 공식 웹사이트(www.korea-dpr.com)를 찾았다. ‘사업(business)’이라는 항목을 클릭했더니 북한의 수출품목과 담당자 e메일 주소가 나왔다. “북한과 사업을 하고 싶다”는 e메일을 보냈다. 놀랍게도 24시간이 채 되지 않아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는 답신이 왔다. 노코의 시작이었다.

2007년 11월 사업품목으로 청바지를 택한 이들은 주스웨덴 북한대사관에 전화로 의향을 전했다. 북한대사관 측은 “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주겠다”고 화답했다. 일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듬해 봄 평양 방문이 결정됐다. 이들은 대사관 측에 “평양의 보통사람들과 대규모 매스게임을 보고 싶다”고 전했다. 그러자 북한대사관은 “‘위대한 지도자’ 김일성 장군의 묘와 동상을 참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2008년 7월 중국 베이징에서 기차를 타고 평양에 도착했다. 동씨 성을 가진 남성과 이현경 씨라는 안내원이 마중 나왔다. 평양 고려호텔에 여장을 푼 뒤 이 씨 일행과 호텔 내 가라오케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 씨 일행은 행진곡풍의 북한 노래를, 이들은 비틀스 노래를 불렀다. 마지막에는 이들도 북한 웹사이트에서 자주 들었던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 아래’라는 북한 대중가요를 함께 불렀다. 이날 밤 가라오케(Karaoke)에서의 추억이 노코 청바지의 브랜드 ‘카라(Kara)’와 ‘오케(Oke)’라는 이름을 낳았다.

이들은 평양에서 열흘 동안 머물며 청바지를 만드는 책임자를 찾았다. 의류사업 담당자를 만났지만 난색을 표했다. 조바심이 나던 체류 마지막 날 탄광사업 책임자와 계약을 체결했다. 흥미로운 것은 탄광사업 내에 섬유 부문이 들어있다는 것.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악수를 나눈 뒤 사진을 찍고서 스웨덴산 보드카로 건배를 했다. 청바지는 푸른 블루진 대신 검은 블랙진으로 했다. 블루진이 너무 미국적이라고 생각해 꺼리는 듯했다. 1년 반 뒤인 지난해 11월 북한산 청바지 1100벌이 스톡홀름에 도착했다.

세 사람은 “북한 같은 고립된 나라에 바깥세상의 영향은 어떤 식이든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고 말했다. 백화점에서 ‘쫓겨난’ 노코 청바지는 지난해 12월 중순 이들이 스톡홀름에 연 임시매장에서 장당 1500크로나(약 25만 원)에 팔리고 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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