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사장 하토야마 vs 냉혹한 오너 오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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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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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부단 총리 vs 카리스마 간사장
정권출범 100일만에 확 갈린 위상

‘리더십 부족’ 하토야마
후텐마 문제 수차례 말바꿔
지지율 48% 그쳐 사면초가

‘상왕 오자와’ 여론 명분삼아
민주당 총선공약 수정 요구
당정 역할분담 원칙 파기

일본 민주당 정권의 핵심은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와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간사장이다. 민주당 정권이 25일로 출범 100일을 맞으면서 정권의 쌍두마차인 두 사람의 위상과 역할, 상호관계가 비교적 뚜렷하게 대비되고 있다. 이들의 ‘동행 100일’은 한마디로 하토야마 총리는 ‘월급사장’, 오자와 간사장은 ‘오너’라는 말로 상징할 수 있다.

○ 영역 넓히는 오자와 vs 입지 줄어드는 하토야마

9월 16일 정권 출범 때부터 ‘이중권력’ ‘상왕 오자와’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오자와 간사장의 존재는 막강했다. 민주당 정권이 △정책은 정부로 일원화하고 △내각은 하토야마 총리가 관할하며 △당무는 오자와 간사장이 맡는다고 역할 분담을 선언한 데에는 오자와 간사장의 영향력을 당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도가 컸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오자와 간사장의 영역은 커지는 반면 하토야마 총리는 위축되는 모양새다.

오자와 간사장은 최근 아동수당 지급 대상에 소득제한을 두고 세원(稅源) 확보를 위해 휘발유 잠정세율을 유지해야 한다고 정부에 공개 요구했다. 민주당의 주요 총선 공약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으로, 당초 역할분담 원칙에 따르면 이는 하토야마 총리의 영역이다. 일본 언론은 이를 ‘정부로의 정책 일원화’ 원칙이 깨져가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정부 주도로 내년도 예산안을 전면 재검토해 6900억 엔을 줄이기로 한 데 대해서도 오자와 간사장이 막판에 개입해 숫자를 바꿔놓았다.

그의 힘의 원천은 145명에 이르는 당내 지지세력이다. 하토야마 세력의 3배가 넘는다. 연립 파트너인 사민당과 국민신당도 아쉬운 게 있으면 오자와 간사장부터 찾는다. 당내 민원창구를 장악한 오자와는 여론을 명분 삼아 “국민이 원한다”거나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 이기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이다.

하토야마 총리로선 오자와 간사장의 영역 확대를 말없이 지켜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당에선 오자와 간사장에게 가려 있고, 사민당과 국민신당은 캐스팅보트를 무기 삼아 후텐마(普天間) 비행장 이전 문제와 예산편성, 금융정책 등에서 딴죽을 걸고 있다. 미국과도 껄끄러운 관계여서 안팎으로 시달리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위장 정치헌금 문제가 고구마 줄기 캐듯 불거져 나오면서 리더십이 약해진 측면도 있다.

지난달 한 신문의 여론조사에서 ‘정권의 최대 실세’로 오자와 간사장을 꼽은 비율이 42%인 반면 하토야마 총리는 18.3%에 그쳤다.

○ 우유부단 하토야마 vs 색깔 분명한 오자와

하토야마 내각 지지율이 추락하는 가장 큰 요인은 리더십 부족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후텐마 기지 문제에서 하토야마 총리는 수도 없이 이랬다 저랬다를 반복하며 미국과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일관성 없이 미국과 오키나와(沖繩) 주민의 여론, 연립여당 파트너의 요구에 휘둘리는 모습이었다. 지지율 48%를 기록한 19, 20일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 ‘하토야마 총리가 리더십을 발휘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74%였다.

관료 개혁이나 얀바댐 공사 중단, 중소기업에 대한 은행채무 상환 연기 등 굵직한 정책에서도 하토야마 총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오자와 간사장이나 담당 장관만 전면에 등장했다.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 금융상, 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穗) 소비자담당상,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외상 등 머리 굵은 장관들은 공개적으로 총리와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내각에선 히라노 히로후미(平野博文) 관방장관 외엔 총대를 메는 장관이 없는 형국이다. 당에서 주요 당직자들이 오자와 간사장을 중심으로 뭉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문제는 하토야마 총리가 궁지에 몰려도 오자와 간사장이 거들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자와 간사장이 최근 일본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의 일왕 면담 절차를 둘러싸고 자신에게 화살이 쏟아지자 기자회견을 자청해 강력히 반론을 편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마디로 오자와 간사장은 정권이나 자신은 방어하지만 하토야마 총리 개인은 지켜주지 않는 모습이다. 이를 두고 “오자와 간사장이 일정 시점에서 스스로 전면에 나서거나, 아니면 하토야마 총리의 후속 타자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극단적인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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