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 꿈도 안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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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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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패닉 美이민자들, 금융위기후 고단한 삶
직원 거느린 하도급업자서 지난해 일용노동자로 전락
11월들어 고작 나흘 일해… 집없어 車에서 숙식해결

페루 출신의 이민자 호세 로드리그 씨(51·왼쪽)가 20일 버지니아 주 애넌데일의 대낮 인력시장에서 동료들과 얘기하고 있다. 애넌데일=최영해 특파원
페루 출신의 이민자 호세 로드리그 씨(51·왼쪽)가 20일 버지니아 주 애넌데일의 대낮 인력시장에서 동료들과 얘기하고 있다. 애넌데일=최영해 특파원
“오전 7시에 나와서 오후 3시까지 기다려도 찾는 사람이 없어요. 나처럼 매일 여기에 와서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이 1000명은 돼요. 일자리 얻기가 너무 힘들어요.”

미국 버지니아 주 애넌데일의 맥도널드 가게 앞 대낮 인력시장에서 20일(현지 시간) 오후 기자와 만난 호세 로드리그 씨(51)는 아침부터 일자리를 찾았지만 이날도 공쳤다. 그는 “페인트칠과 이삿짐 운반, 목공일 등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다”면서 “1시간에 10달러를 받고 싶은데 뽑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기자와 얘기하던 중에도 차가 지나가면 손을 번쩍 흔들었다. 구인 차량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차가 떠난 후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로드리그 씨는 “오늘도 틀렸다”고 혼잣말을 되뇌었다. 그는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은 과테말라나 엘살바도르 같은 카리브 해 지역에서 온 중남미 출신이 대부분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일당을 버는 날을 ‘행운’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정말 어렵다”고 설명했다.

로드리그 씨는 이달 들어 딱 나흘 일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는 “이곳 히스패닉들은 두세 가족이 한 곳에 모여 사는 경우가 많은데, 집세를 내기가 도저히 어려워 가장들이 돌아가면서 돈을 벌고, 번 돈을 한데 모아 식비까지 해결한다. 나는 집이 없어 차에서 잠을 잔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입고 있는 청바지가 인근 한국 교회에서 받은 것이라고 얘기했다. 한국 교회의 김 목사님이 매주 월요일 음식도 나눠준다면서 옷가지와 신발, 음식을 교회에서 해결할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로드리그 씨는 “경기가 안 좋으니까 일만 시키고 돈을 떼먹는 악덕 고용주도 많다”면서 “3주일 노동계약을 해놓고 1주일은 돈을 잘 주다가 나머지 2주일은 떼먹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영어를 못하는 히스패닉들이 많아 억울한 사정을 어디에 호소할 방법도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1989년 미국에 건너 온 그는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직원을 거느린 하도급업자였다. 페인트칠과 목재 조립, 시멘트 작업, 건물 철거 등 막일을 하는 노동자들을 모아 일감을 나눠줬지만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고객이 떨어져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는 “정말 힘들다. 일을 찾지 못하는 히스패닉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은 이제 사라졌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며 하늘을 쳐다봤다. 오늘도 일자리를 찾은 사람은 수십 명에 그쳤다고 한다. 그는 내일 오전 7시에 또 이곳에 나올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에게 애넌데일 인력시장은 삶의 터전이자 직장이었다.

애넌데일(버지니아 주)=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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