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기를 죽여주세요"…슬픈 모정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3일 14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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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유지 장치에 의지해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돌배기 아이의 목숨을 놓고 아기의 부모가 법정에 섰다. 아기의 엄마는 "고통 받는 아이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며 인공 호흡장치를 떼 달라고 하고, 아버지는 "수술을 하면 가망이 있다"며 살려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영국 데일리 메일 등 현지 언론은 고등 법원에서 아이의 생명을 놓고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 부모의 기막힌 사연을 3일 보도했다.

지금은 갈라섰지만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 부모의 아이는 'RB'라고만 알려져 있다. RB는 태어날 때부터 신경과 근육의 접합 부위에 이상이 있는 선천성 미아스테닉(myasthenic) 증후군을 앓고 있어 신체의 거의 모든 근육이 마비돼 있는 상태. 스스로는 숨을 쉴 수도 없다. 오로지 의식만이 건강하게 살아있을 뿐 RB는 무기력한 신체에 꼼짝없이 갇혀 있는 신세다. 또래는 걸음을 떼고 말을 배울 시기이지만 RB는 엄마 아빠를 알아보고도 웃지 못한다.

RB는 '생존'을 위해 폐에서 주기적으로 물을 빼내는 등 참기 힘든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의료진은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아이의 엄마도 이에 동의했다.

엄마 측 변호를 맡은 앤서니 페어웨더 씨는 "아이의 엄마는 하루 종일 아이 곁을 지키며 자식이 겪는 고통을 모두 지켜보고 있다. 그녀는 아이가 받는 고통이 자신이 아들을 잃고 난 뒤 느껴야 할 슬픔보다 크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RB의 뇌는 정상이어서 보고 느끼고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신체적으로 무력한 아기에게 이렇게 살아있는 의식은 고통을 더할 뿐이라고 의료진은 보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 생각은 반대이다. 그는 의료진의 비관적인 판단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기관지 절개수술을 받고 나면 집에서 요양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더구나 아이는 조그만 몸뚱이를 이완하거나 눈에 힘을 주는 방식으로 의사표현도 한다는 것. 아는 사람을 보면 웃는 시늉을 하고 목욕을 씻겨주면 좋아하는 표정을 지으며 눈물도 흘린다.

이처럼 엄마와 아버지의 견해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제3의 전문가가 이번 주말 RB의 상태를 검사한 뒤 기관지 절개수술로 호전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해 그 결과를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법원이 '슬픈 모정'의 손을 들어준다면 이는 영국 법원이 부모 중 어느 한 쪽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뇌손상을 입지 않은 아이의 생명 유지 장치 제거를 허용하는 첫 사례가 된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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