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당-관료-재계 ‘철의 트라이앵글’ 무너질까

  • 입력 2009년 9월 2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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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자민당 창당 이후 일본 사회를 끌어온 정(자민당)-관(공직사회)-재(대기업)의 이른바 ‘철의 트라이앵글’이 자민당의 선거참패로 와해될 위기에 처했다. 이들 3자는 서로 긴밀한 유대와 공조를 통해 전후 일본의 경제성장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자민당의 붕괴로 이들 3자의 협력관계는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관료 “우린 실무자일 뿐” 백기투항

예산 재편성-아동수당 지급
“민주당 방침 따르겠다” 선언

50년 넘게 지속돼온 일본의 관료 주도 국정시스템을 혁파하겠다고 공언해온 민주당이 집권하자 관료사회가 납작 엎드렸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대표는 개표 직후 정권교체의 의미를 “관료 주권에서 국민 주권으로의 교체”라고 선언했다.

민주당은 여당 의원 100명을 각 부처에 장관 부장관 정무관 장관보좌관으로 투입해 관료조직을 장악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운영의 핵이던 사무차관 회의도 폐지된다. 민주당 공약에 국민 절대 다수가 지지표를 던졌기 때문에 관료로선 저항할 명분도 없는 상황이다.

관료의 수장인 각 부처 사무차관은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의 정치 주도 방침에 따르겠다”며 백기투항을 선언했다. 미국 핵 항공모함 등의 핵 반입과 관련한 미일 밀약에 대해 조사하겠다는 민주당 방침에 대해 야부나카 미토지(藪中三十二) 외무성 사무차관은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외교는 정치 주도가 당연하다. 우리는 실무자일 뿐이다”고 말했다. 수십 년 전부터 추진돼온 4600억 엔 규모의 대형 국책사업인 군마(群馬) 현 얀마 댐 건설사업에 대해 다니구치 히로아키(谷口博昭) 국토교통성 사무차관은 “새 장관의 지시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댐 사업 중지를 공약했었다.

민주당은 각 부처가 요구한 내년도 예산 92조 엔을 백지화하고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편성하기로 했다. 낭비 예산과 급하지 않은 사업 예산을 줄이거나 없애 내년부터 지급하겠다고 공약한 아동수당 지급, 고교 무상교육 등의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모치즈키 하루후미(望月晴文) 경제산업성 사무차관은 “위정자가 결정하는 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가 의욕을 보인 애니메이션 전당 설립도 무산됐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의 숙원사업이던 우정 민영화도 좌초 위기에 처했다.

총선 직후인 1일 소비자청이 신설되자 민주당은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조직은 허용하겠지만 책임자 임명은 인정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하토야마 대표는 “정권교체기인데도 민주당의 눈에 거슬리는 요구를 한 것은 환영할 수 없다”며 관료 군기잡기에 나섰다.

그러나 지금은 관료사회가 엎드리고 있지만 이후 조직적인 저항 또는 비협조로 나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민주당 정권의 성패가 달렸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 재계 “정책참여 길 막힐라” 초긴장 ▼

“공약은 공약일뿐” 마음 놓다가
규제완화 후퇴 분위기에 당혹

일본의 재계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새 정부가 추진할 경제정책이 일본경제에 가져올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계는 총선 전만 해도 “공약은 공약일 뿐”이라며 민주당의 공약에 그리 무게를 두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공약을 그대로 밀어붙일 기세를 보이자 다급해졌다.

재계가 가장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 이후 국가운영 시스템의 변화가 가져올 불확실성이다. 전후 일본 경제정책의 운용은 정계-관계-재계의 3자가 모여 사전협의와 합의를 통해 이뤄져 왔다. 재계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그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했고 자민당과 관료는 이를 충실하게 정책에 반영했다. 기업으로서는 모든 정책이 예측 가능했던 셈이다. 그러나 자민당은 대패했고 민주당 정권하에서 관료도 힘을 잃을 지경에 놓였다. 재계가 앞으로 새 정부와 어떻게 의사소통 구조를 형성해야 할지가 고민이다.

재계는 하토야마 민주당 대표의 경제정책에 녹아 있는 현실진단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하토야마 대표는 “고용불안 등 일본 사회문제는 대부분 과도한 글로벌화와 규제개혁이 불러왔다”고 평가하고 있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이 반시장주의로 흘러갈 수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총선 직후 실시한 기업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인 10명 중 6명 이상이 “시장원리에 기반한 경제성장”을 민주당에 가장 바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계는 정부가 직접 가계소득을 지원해 내수를 활성화하겠다는 하토야마 정권의 성장전략에 대해서도 “당장 눈앞의 경기대책에 급급하기보다는 중장기적인 성장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재정을 풀어 가계소득을 지원하는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하토야마 정권의 경제 관련 공약 중에는 재계의 이해관계에 정면 배치되는 것도 다수 있다. 새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2020년까지 1990년의 25%로 정할 계획이다. 이에 기업들의 절반은 정책 수정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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