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폴 크루그먼]멀고 험난한 건보개혁의 길

  • 입력 2009년 8월 18일 02시 55분


미국의 한 경제전문 일간지 ‘인베스터스 비즈니스데일리’는 얼마 전 민주당의 건강보험 개혁을 비난하는 사설을 실었다. 이 사설은 정부가 건강보험을 운영하는 영국에서였다면 루게릭병을 앓는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살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의 국가의료서비스는 호킹 박사의 삶을 ‘본질적으로 가치 없다’고 간주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영국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고 국가의료서비스의 보호를 잘 받아 온 호킹 박사는 (이 보도를) 재미있어 하지 않았다.

이런 주장은 버락 오바마의 건강보험 개혁이 미국을 영국으로, 다시 말해 디스토피아적 버전의 영국으로 만들 것이라고 믿게 하려 한다. 라디오 토크쇼나 폭스뉴스에서 흥분해서 소리만 질러대는 사람들은 그 개혁이 미국을 소련으로 바꿔 놓을 것이라고 믿게 하려 한다. 그러나 민주당의 개혁은 거칠게 말해 사회주의적 지옥이 아닌 스위스로 바꾸려는 것이다.

선진국들의 건강보험에 대해 얘기해보자.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들은 모든 시민에게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를 보장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주로 세 가지 접근법으로 나눌 수 있다.

영국은 정부가 병원을 운영하고 의사들을 고용한다. 미국인들은 이런 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한 괴담을 듣곤 했다. 하지만 모두 거짓말이다. 영국 국가의료서비스 역시 문제는 있다. 하지만 미국에 비해 약 40%의 비용만 들이면서도 전체적으로 상당히 훌륭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보편의료 적용의 두 번째 수단은 실제 진료는 민간의료기관에서 하되 정부가 청구서의 대부분을 지불하는 체계다. 캐나다와 (약간 복잡하지만) 프랑스가 이에 해당한다. 메디케어(65세 이상 노인을 위한 보험)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인들에게는 친숙한 체계다.

다시 말하지만 미국인들이 그런 공공 의료시스템에 대해 들은 무시무시한 이야기의 대부분은 잘못됐다. 캐나다의 만성질환자들은 미국인보다 자국 시스템에 만족한다. 메디케어도 대상자들에게는 인기가 높다. 이는 타운홀 미팅에서 메디케어 프로그램에 손대지 말라는 시위자들의 목소리를 통해서도 확인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간 보험회사를 통해 커버하는 방법이 있다. 민간 보험회사에 대한 규제와 지원을 병행해 모든 사람에게 보험을 적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스위스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에서 가장 흔한 형태의 건강보험 역시 스위스 식 요소를 일부 갖고 있다. 기업 고용주는 근로자의 병력을 문제 삼지 않고 보험에 가입시키는 규칙, 저임금 근로자에게는 보조금을 주는 원칙에 충실히 따르게 된다.

오바마 식 개혁은 기본적으로 수혜대상을 넓히기 위해 규제와 보조금을 사용해 미국의 건강보험을 스위스 식 모델로 바꾸려는 것이다.

우리가 무(無)에서 시작하려 했다면 아마도 이 모델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정한 ‘의료 사회화’ 제도는 비용이 덜 들어야 한다. 또 공공의료보험인 메디케어를 모든 미국인에게 확대 적용하려는 구상은 스위스 식 모델보다는 훨씬 저렴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가 공공의료보험이 민간 보험과 경쟁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내가 믿는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증가하는 비용이 모든 노력을 갉아먹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현 단계에서 보편적인 건강보험을 방해하는 것은 의료-산업 복합체의 탐욕, 극우 선전기구의 거짓말, 잘 속아 넘어가는 유권자들의 태도 등이다.

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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