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한 오바마, 외할머니 영혼 불러내다

  • 입력 2009년 8월 17일 03시 02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 시간) 콜로라도 주의 한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 도중 열기가 오르는지 웃옷을 벗고 있다. 그랜드정션=AP 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 시간) 콜로라도 주의 한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 도중 열기가 오르는지 웃옷을 벗고 있다. 그랜드정션=AP 연합뉴스
가슴속 아픈 기억 들춰내…건보개혁 반대공세 맞서

“나는 할머니를 지난해 잃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늙고 병들어 힘들게 병마와 싸우는 걸 지켜보는 게 어떤지 압니다. (그런 내가) 할머니들의 플러그를 빼려 한다고요?(연명치료를 강제로 중단시킨다는 뜻)”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갈수록 격해지는 건강보험 개혁 반대세력의 공세에 맞서 외할머니 얘기를 꺼냈다. 가슴속에 소중히 담아온 기억의 편린을 들춘 것이다.

15일 콜로라도 주의 한 고교 체육관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건보 개혁이 이뤄지면 정부가 ‘죽음의 위원회(death panel)’를 만들어 차도가 없는 노인환자 치료를 중단할 것”이라는 반대파의 주장을 ‘공포 전술’이라고 맹공했다. 이어 떨리는 목소리로 숨진 외할머니를 언급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병으로 잃는 아픔을 직접 겪었던 당사자’라는 것을 강조해 반대파의 주장을 “속임수”라고 몰아붙인 것이다.

그는 10세 때부터 대학 입학 때까지 하와이 서민 아파트에서 외조부모와 함께 살았다. 케냐 출신의 아버지는 자신이 아기일 때 집을 떠났고, 백인 어머니는 인도네시아 남자와 재혼해 인도네시아에서 살고 있었다. ‘백인 노부부와 흑인 손자’ 가정은 화목했지만 ‘평범한 구성’은 아니었다. 그 손자가 자라 대통령에 도전하는 것을 ‘기적을 목도하는’ 것 같은 심정으로 지켜봤을 것이다. TV로 나오는 손자 얼굴을 보겠다며 뒤늦게 각막 이식수술까지 받았지만 기구하게도 손자가 당선되기 하루 전날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요즘 연일 이어지는 타운홀 미팅에서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직접 토론을 주도하는 대통령에 대해 미 언론은 “완전히 대선 캠페인 모드로 돌아간 듯하다”고 묘사하고 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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