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영국 ‘날개가 없다’

  • 입력 2009년 8월 3일 02시 55분


경제위기로 국방예산 대폭 감축… 대외영향력 급속 위축
디플레이션 우려속 실업률 - 부채 급증 ‘내 코가 석자’
뉴스위크 “대영제국 시절 잊고 작은 영국에 만족해야”

‘위대한 영국은 이제 잊어라.’

대영제국 시절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영국.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제국이 무너진 후에도 수십 년 동안 세계무대에서 ‘작은 강대국’으로 군림해 왔다. 금융을 비롯한 앞선 경제력과 문화적 영향력, 핵보유국으로서의 막강한 군사력, 최강대국인 미국과의 끈끈한 유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국은 세계 분쟁에 개입하고 각종 국제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등 옛 제국의 면모를 부분적으로 유지해왔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위기가 영국의 성장을 이끌어온 금융업을 강타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소매물가가 50년 만에 처음으로 하락하는 등 디플레이션 우려가 가시화되고 있고 실업수당 수령자도 1997년 이후 처음으로 200만 명을 넘어섰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68.6%인 영국의 국가채무가 5년 뒤에는 100%에 근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근호(8월 17일자)는 ‘위대한 영국은 잊어라’라는 제목의 특집기사에서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로 영국의 대외영향력이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다”며 “대영제국 시절 한 번도 지지 않았던 태양이 영국의 야심에 기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잡지는 “영국은 이제 세계무대에서의 역할을 재고할 때가 됐다”며 “아마도 ‘작은 영국’에 만족해야 할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영국은 세계무대에서 자신의 국력을 넘는 과도한 역할을 추구해온 거의 유일한 나라였다. 냉전시대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도와 소련의 붕괴를 도모했고 자본주의 확산에 기여했다. 1997년부터 10년 동안 재임한 토니 블레어 총리는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3개 지역에서 전쟁을 했다. 군사적 개입 건수가 세계경찰을 자처하는 미국 다음으로 많았다. 그 덕분에 윈스턴 처칠 총리 이후 영국이 가지지 못했던 국제적 영향력을 일시적으로 되찾기도 했지만 2005년 GDP 순위 세계 4위였던 영국은 2006년과 2008년 각각 중국과 프랑스에 추월당하며 5위, 6위로 밀려났다.

뉴스위크는 경제위기로 국방부와 외교부 예산이 대폭 깎여 영국이 지금과 같은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규모 예산 삭감은 ‘하드파워’(군사력, 경제력 따위를 앞세워 상대방의 행동을 바꾸게 하거나 저지할 수 있는 힘)와 ‘소프트파워’(정보 과학이나 문화·예술 등이 행사하는 영향력) 모두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강대국의 상징인 핵전력 역시 예산부족 때문에 핵잠수함용 첨단미사일 시스템 도입이 늦춰지는 등 핵 억지력 유지에 애를 먹고 있다. 중국 인도 등 신흥 경제대국이 급부상하고 있고 미국이 새로운 강대국들과 협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영국이 누리고 있는 국제적 위상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고든 브라운 총리가 물러나고 야당인 보수당이 집권해도 추락하는 현 추세를 뒤집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보수당 측은 최근 의회 연설에서 “영국이 과거처럼 세계 문제에 영향력을 발휘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공정책연구소의 이언 키어런 박사는 “영국은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지만 저무는 나라”라고 말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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