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9년 6월 3일 02시 57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아소-메드베데프, 내달 정상회담 앞두고 기선잡기 설전
일본과 러시아가 다음 달 초순 정상회담을 앞두고 쿠릴열도 남단 4개 섬 영유권 문제를 놓고 서로 기선잡기에 나섰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총리가 최근 “러시아가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하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즉각 “러시아의 주권을 문제 삼으면 교섭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반세기 넘게 분쟁을 벌여온 영유권의 해법 찾기가 최근 속도를 내면서 벌어진 양상이다.
○ 일본, 총선 앞 여론 의식 적극 제기
적극적인 쪽은 일본이다. 최근 4개 섬 영유권 문제의 해결 기미가 보이기 때문이다. 올 2월 아소 총리는 사할린에서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만나 영유권 문제 해결에 속도를 내기로 합의했고, 지난달 일본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로부터 “7월 초 러-일 정상회담에서 모든 형태의 논의를 하자. 그때 러시아의 입장을 내놓겠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아소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4개 섬 일괄반환을 집요하게 요구해왔다. 이는 일본의 오랜 숙원일 뿐만 아니라 총선을 앞두고 여론을 의식한 측면도 있다.
일본에서 북방영토로 불리는 쿠릴열도 남단 4개 섬은 사할린과 홋카이도(北海道) 사이의 에토로후(擇捉), 구나시리(國後), 시코탄(色丹), 하보마이(齒舞) 섬으로 이뤄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옛 소련이 4개 섬을 차지하면서부터 일본이 꾸준히 반환을 요구해왔다. 1956년 양국은 “두 나라가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2개 섬(시코탄과 하보마이)을 양도한다”고 합의했으나 평화협정이 늦어지면서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 러시아, ‘경제지원 얻어내자’
일본은 최근 러시아와 동시베리아 유전개발 및 원자력기술협력 협정을 맺는 등 경제력을 앞세워 영유권 문제 해결의 분위기 조성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경제적으로 성의를 보인 만큼 다음 달 초 정상회담에서 러시아가 보따리를 풀어놓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속내는 사뭇 다르다. 4개 섬은 고사하고 2개 섬을 반환할 의사도 없다는 분석이 많다. 4개 섬을 일본에 양보하면 비슷한 영유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발트 해 연안국들이 똑같은 요구를 해올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4개 섬을 지렛대 삼아 일본의 경제협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려는 속셈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러시아가 최근 일본에 요청한 경제지원 규모가 총 180개 사업, 2조5000억 엔(약 32조 원) 규모라는 언론 보도도 있다.
○ 일본 내 목소리 제각각
일본 내 통일되지 않은 목소리도 걸림돌이다. 일본 정부는 1956년 옛 소련과 ‘평화협정 체결 후 2개 섬 반환’에 합의했다. 하지만 최근엔 외무차관 출신의 정부 공식대표가 4개 섬 가운데 작은 3개 섬은 전부, 북쪽의 가장 큰 섬은 절반만 반환받자는 ‘3.5도 반환론’을 제기했다가 여론과 정치권의 호된 비판을 받았다.
아소 총리도 외상 시절에 4개 섬을 면적으로 계산해 50%씩 나누자는 ‘면적 2등분론’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일본에선 ‘러시아와의 협상에 앞서 정부 방침부터 통일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