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동유럽의 꿈’

  • 입력 2009년 2월 20일 02시 56분


체코-헝가리 등 통화가치-주식 급락… 연쇄 디폴트 우려 확산

국채 가산금리 치솟고

해외투자-차입금 썰물

각국 사태 해결 안간힘

‘포르셰 스포츠카와 마천루를 자랑하던 도시의 성장세가 갑자기 멈췄다. 사회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 서유럽 부국을 따라잡으려던 동유럽의 꿈은 미뤄졌다.’(18일 AP통신)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동유럽 경제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동유럽의 연쇄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면서 각종 경제 관련 수치도 춤을 추고 있다.

각국 정부가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이 추세를 되돌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너지는 꿈=통화가치 급락, 주식시장 급락, 국가 신용등급 하락, 가산금리 급등…. 동유럽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상황은 절박하다.

18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체코의 10년 만기 채권 가산금리는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 ‘동유럽에서도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찍힌 헝가리 국채의 가산금리는 브라질보다 20베이시스포인트(0.2%) 더 높다.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매긴 헝가리의 투자등급이 브라질보다 4단계나 높은데도 최근 가산금리가 급등하면서 국채 가치는 비슷한 수준까지 떨어진 것.

폴란드의 경우 신용부도스와프(CDS) 시장에서 디폴트 가능성이 세르비아 수준까지 올라갔다. 세르비아는 폴란드보다 신용등급이 6단계 더 낮은 국가다. 폴란드 통화인 즐로티 가치는 올해 들어 벌써 15%나 하락했다.

덴마크 단스케 은행의 라르스 크리스텐센 신흥시장 담당 대표는 “시장은 이미 동유럽과 중부유럽이 ‘유럽의 서브프라임(비우량) 지역’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투자금을 빼내가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투자와 차입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경제전망도 더 암울해졌다. 씨티그룹은 중부 및 동유럽 신흥경제국의 평균 경상적자가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4.1%로 중남미 평균(1.7%)보다도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간힘은 쓰지만=파이낸셜타임스는 19일 폴란드가 유럽중앙은행과 유럽환율메커니즘(ERM-Ⅱ) 가입 문제를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유로존 가입에 필요한 이 절차를 진행해 2012년으로 예정된 유로통화 사용 시기를 앞당기려는 것.

유럽연합(EU)에 가입한 중부 및 동유럽 12개국 중 유로존에 가입한 나라는 아직까지 슬로바키아와 슬로베니아뿐이다. 나머지 10개국은 홀로 ‘환율과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 데다 유럽중앙은행과의 통화 스와프 협정도 체결돼 있지 않아 외환위기에 대응할 기반이 취약하다.

폴란드는 이와 함께 “환율이 유로당 5즈워티를 넘을 경우 외환시장에 개입하겠다”고 밝혔다. 체코는 경기부양을 위해 검토했던 금리인하를 포기하고 정반대로 금리인상을 통한 환율 안정책을 검토 중이다. 헝가리는 “환율안정을 위해 이례적인 대책까지 총동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서유럽 선진국들이 동유럽 경제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며 이들 정부를 측면 지원했다.

하지만 동유럽 정치권은 이런 시도를 뒷받침해 주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경제회복 프로그램을 이행하지 않아 이달부터 구제금융 지원이 유예됐다.

헝가리 야권은 “IMF의 프로그램을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거리로 나섰고, 폴란드도 옛 공산권과 포퓰리스트 세력 간 갈등이 이어지면서 EU가 요구한 주요 산업의 구조조정을 단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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