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비정규직 해고 10만명 ‘생계형 범죄’ 후폭풍 확산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월 21일 02시 54분



일본 사이타마 현 우라와 시에서 해고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파견근로자들. 사진 제공 아사히신문
일본 사이타마 현 우라와 시에서 해고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파견근로자들. 사진 제공 아사히신문
종신고용과 세계 최고 수준의 치안을 자랑해온 일본에서 수만 명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으면서 이와 관련한 각종 사회적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후쿠시마(福島) 현에서는 18일 빈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려던 30대 남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한 달 전 자동차부품공장 파견직에서 해고된 그는 경찰에서 “날씨는 추운데 먹을 것도 없고 잠잘 곳도 없어서…”라고 말했다.

16일 시즈오카(靜岡) 현 후지에다(藤枝) 시에서는 슈퍼마켓에 침입해 과자 20개를 훔치던 40대 남성이 체포됐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최근 해고된 그는 “일자리도 없고 배가 고파 훔쳤다”며 고개를 숙였다.

연말 분위기가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30일 도쿄 번화가인 롯폰기에서는 시민을 상대로 무작정 흉기를 휘두르던 20대 남성이 붙잡혔다. 며칠 전 파견직 계약 종료 통보를 받은 그는 조사에서 “(연말 분위기를 내려고) 수많은 사람이 몰려나온 것을 보고 갑자기 울분이 치솟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2005년 도쿄의 한 사립대를 졸업한 후 아르바이트와 파견직을 전전해 왔다.

요즘 일본 신문 사회면에는 해고된 비정규직 근로자가 연루된 사건사고 기사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은행에서 현금을 찾아 나오는 여성의 돈가방을 날치기한 사건, 가정집에 들어가 주먹밥을 훔친 젊은 남성,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남의 집에 불을 지른 사람….

사건사고의 중심에는 최근 일자리를 잃은 파견 근로자들이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생계가 막막하고 배가 고팠다”거나 “그냥 사회가 싫다”고 진술한다.

이런 가운데 최근 오사카의 한 아파트에서는 49세 남성이 굶어 죽은 지 한 달여 만에 발견돼 일본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임시계약직으로 일하다 1년 전 해고된 그는 부검 결과 위에서 음식물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당초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지난해 말부터 올 3월까지 모두 8만5000명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직장을 잃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자동차업체 등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해고 계획이 속속 늘어나면서 해고자는 조만간 10만 명을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확산될 조짐이 뚜렷해지자 일본 정부와 여야 정치권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여야 정치권은 파견근로자와의 계약을 파기하는 제조업체에 대해서는 재취업 알선을 의무화하고, 직장을 잃은 파견근로자를 임대아파트에서 곧바로 내쫓지 못하도록 법제화하는 방안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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