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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1월 20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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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킹 선데이’는 오바마 선데이”
18일 오후 미국 워싱턴 시내 링컨기념관 앞.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은 아직 이틀 남았지만 미리 ‘상경’한 40만 인파가 몰(의사당에서 링컨기념관 사이 길게 펼쳐진 광장 지역)의 서쪽 끝자락을 가득 메웠다. ‘우리는 하나(We are one)’를 주제로 열린 취임축하 공연 내내 환호와 웃음의 도가니였다.
링컨기념관 앞은 46년 전에도 수십만 인파가 모였다. 하지만 당시의 분위기는 달랐다. 미국 민권운동사에 획을 그은 1963년 8월 28일 워싱턴평화행진을 벌이면서 마틴 루서 킹 목사는 “흑인과 백인 아이들이 어깨동무하고 걸을 수 있는 날”을 자신의 꿈이라고 역설했다. 행진 슬로건은 공립학교에서의 흑백 분리 철폐, 민권운동가에 대한 경찰 폭력 중단 등이었다.
킹 목사의 생일(1월 15일)을 기념해 매년 1월 셋째 주 월요일은 연방 공휴일로 지정됐고 올해는 공교롭게도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이브가 됐다.
킹 목사의 고향 조지아 주에선 기념일 전날인 1월 셋째 주 일요일을 ‘킹 선데이’로 부른다. 그런데 올해 킹 선데이는 ‘오바마 선데이’이기도 했다.
18일 미 전역 흑인교회에선 “킹 목사의 꿈이 실현되고 있다”는 설교와 기도가 쏟아져 나왔다.
“킹 목사는 인종평등이란 꿈을 추구했고, 오늘 우리는 그 꿈이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을 통해 구현됨을 보고 있다”(볼티모어 베델 AME 교회의 프랭크 라이드 목사·AP통신 보도)
“나는 오바마를 보면서 킹 목사의 메아리를 듣는다. 20일은 정의의 티핑포인트(균형이 무너지는 임계점)다.”(시애틀 마운트자이언의 에런 윌리엄스 목사)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은 현대 민권운동의 정점이다. 킹 목사가 오늘을 본다면 기쁨에 넘칠 것이다. 하지만 이 환희가 우리 앞에 놓인 끝나지 않은 과업에 눈을 가리게 하면 안 된다. 성경말씀대로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을 먹이고 입혀야 한다.”(제시 잭슨 목사·뉴욕타임스 기고문)
오바마 당선인도 19일자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 나라의 가장 높은 직책을 흑인이 맡았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랄 세대들이 있다는 것은 급진적인 일”이라며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을 미국 사회의 다양한 차이를 아우르고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로 여긴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또 “흑인 어린이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고, 백인 어린이가 흑인 친구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꿀 것이며, 나는 이러한 힘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우리는 지금 전쟁상황에 있어
킹목사의 위대한 정신 살리자”▼
■ 오바마 워싱턴타임스 기고
“통합은 미국을 지탱해 온 힘이자 원칙이다. 미국의 위대한 전통을 되살려 시련을 뛰어넘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마틴 루서 킹 목사 기념일을 하루 앞둔 18일 워싱턴 타임스 특별 기고를 통해 “우리가 의견이 다를 수는 있지만 한마음으로 뭉쳐야 할 때”라고 밝혔다. 다음은 기고문 요약.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이후 200여 년 동안 우리는 전쟁과 평화, 세계공황과 번영 등 수없이 많은 일을 겪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떤 위기나 두려움에도 굴하지 않았으며 한마음으로 극복해 왔다.
우리는 지금 전쟁 상황에 놓여 있다. 경제는 심각한 혼란에 빠졌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 같은 문제들은 심각한 도전이지만 우리는 선배들이 보여준 불굴의 노력과 긍정적 사고로 극복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좌파나 우파라는 낡은 논쟁을 뛰어넘어 현실을 직시하고 실용적인 자세로 맞서야 한다.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거나 편협한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
변화를 끌어내는 힘은 민주주의의 최고 권력인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번 취임식을 단지 또 하나의 신임 대통령을 축하하는 행사가 아니라,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나는 이번 취임식의 본 뜻을 킹 목사의 정신에서 찾고자 한다. 그는 미국을 위해 끊임없이 헌신하는 삶을 살았으며 킹 목사의 위대한 정신은 이후에도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우리가 한데 모여 이 같은 위대한 미국인의 정신을 다시 끌어낸다면 그 어떤 도전도 이겨내고 미국 역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쓰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