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하원 ‘월요일 반란’은… 부시 불신 그리고 표심 때문

  • 입력 2008년 10월 1일 02시 57분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가운데)이 지난달 29일 미 하원의 구제금융법안 부결 직후 워싱턴 의사당에서 스테니 호이어 민주당 원내대표(왼쪽), 램 이매뉴얼 민주당 코커스 의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가운데)이 지난달 29일 미 하원의 구제금융법안 부결 직후 워싱턴 의사당에서 스테니 호이어 민주당 원내대표(왼쪽), 램 이매뉴얼 민주당 코커스 의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부시 호소에도 공화당 의원 67%가 반대표

시민들 “월가 부자 구해주는 법안” 등돌려

“의원직 잃을라… 나는 찬성할수 없다” 고백

미국 다우지수를 사상 최악으로 떨어뜨린 ‘월요일 미 하원의 반란’이 일어난 근본 원인은 ‘불신’이었다.

대통령과 의회 지도부, 대선후보들이 “금융구제안은 금융 시스템을 붕괴 위기에서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수없이 호소했지만 서민들은 “왜 우리 세금으로 월가에 특혜를 주느냐”며 등을 돌린 상황이 의사당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선거를 5주도 남겨놓지 않은 의원들로선 지지율이 바닥을 기는 의회 지도부와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믿고 따라가기엔 각자의 ‘정치 인생’에 너무 큰 모험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지난달 28일 실시된 갤럽 조사에서 부시 대통령의 금융위기 대처에 대한 지지도는 28%에 그쳤고,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지지도도 39%에 불과했다.

특히 집권당인 공화당 의원들은 29일 오전 부시 대통령이 일일이 전화를 걸어 지지를 호소했지만 무려 67%가 반대표를 던졌다.

위스콘신 주 출신 공화당 폴 라이언 의원은 표결 직후 기자들에게 대다수 의원이 차마 공개적으론 말하지 못해왔던 속내를 털어놓았다.

“우리는 모두 의원직을 잃는 걸 걱정했다. 대부분이 ‘금융구제안은 통과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들은 찬성표를 던지길 바란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는 심정이었다.”

특히 11월 4일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선거(하원의원 전체, 상원의원 3분의 1)에서 재선이 위태로운 처지에 있는 의원들의 반대율이 높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분석에 따르면 위기에 처한 공화당 의원 21명 가운데 18명이 반대했고 민주당은 15명 중 10명이 반대했다. 뉴욕타임스의 분석에 따르면 11월 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예정인 의원들은 대부분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하원의 한 관계자는 “‘개인의 정치적 생명만 챙겼다’고 의원들을 나무라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최근 며칠간 의원 사무실마다 구제금융안 반대를 촉구하는 e메일과 팩스가 쇄도했다”고 전했다.

반대표를 던진 민주당 스티브 케이건 의원은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대다수 유권자는 구제금융안을 자신에게 아무것도 해주는 게 없는 ‘월가의 귀족 살리기’ 법안이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이미 지역구의 경쟁상대는 “월가의 억만장자만 구해주는 법안”이라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퍼붓고 있다는 것.

이런 탓에 ‘No Man Left Behind’(‘한 명의 병사도 적진에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미군의 원칙)를 패러디해 ‘No Banker Left Behind(한 명의 은행가도 망하게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비꼬는 말이 나돌 정도다.

특히 공화당 현역 의원들은 민주당 경쟁자가 ‘경제 망친 공화당’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어 당과의 차별화를 도모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다.

하원 표결 과정 자체도 부결의 원인을 제공했다. 합의안은 당초 안에 비해 의회의 목소리가 상당 부분 반영됐지만 110쪽의 방대한 내용을 서둘러 표결에 부치는 바람에 국민에게 충분히 홍보할 시간이 없었고 이는 의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부시 대통령이 의원들을 백악관으로 초대하거나 의회를 찾아 일일이 부탁하는 성의를 보였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합의안 도출의 주역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투표 직전 연설에서 마치 반대를 권유하는 듯한 발언을 한 점도 의원들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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