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대서양 건너 유럽 덮쳤다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4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월례 기자회견에서 금리 동결 방침을 발표하고 있다. ECB는 경기침체 조짐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금리를 인하하지 못했다. 프랑크푸르트=로이터 연합뉴스

■ 美 이어 유로존 흔들… 2분기 첫 마이너스 성장

英 성장률 제로… “90년대 초반 이후 최악”

獨 - 佛도 각각 4년 - 6년 만에 뒷걸음 성장

《경기침체의 먹구름이 미국에 이어 영국으로, 다시 도버해협을 건너 유럽 대륙으로 몰려들고 있다. 유럽 경제는 올 1분기(1∼3월)까지만 해도 부동산시장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미국 경제와는 달리 호조를 보이며 기대 밖으로 선전했다. 그러나 2분기(4∼6월) 들어 유로화 도입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유럽중앙은행(ECB)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유럽 경제의 성장 전망치를 일제히 낮췄다.》

○ 하반기엔 사실상 ‘제로성장’

ECB는 4일 유로화 사용 15개국(유로존)의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1.8%에서 1.4%로 하향 조정했다.

장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는 “경제 전망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유난히 높고 특히 물가급등 현상이 투자 및 소비지출에 악영향을 미침에 따라 경기가 하락할 위험성이 크다”면서 “유로 경제가 약세 국면을 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ECB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 때문에 기준금리를 내리지 못했다. 고유가 등으로 16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노동계의 임금 인상 요구와 기업들의 제품가격 인상을 촉발할 것을 우려해 7년 만에 최고 수준인 4.25%의 현재 금리를 낮추지 못한 것.

유로 지역 물가상승률은 3.8% 수준으로 ECB의 목표치인 2%를 훨씬 웃돌고 있다. ECB는 올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당초 3.4%에서 3.5%로 올렸다.

OECD는 2일 영국을 포함한 유럽 전체의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7%에서 1.3%로 낮췄다. OECD는 유로존 전체의 성장률이 하반기에 거의 제로 수준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 예상되는 영국

OECD는 영국 경제에 대해서는 성장률이 올 3분기(7∼9월)에 ―0.3%, 4분기(10∼12월)에 ―0.4%로 2분기 연속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보통 경제가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 ‘경기침체(recession)’에 들어섰다고 평가한다. 영국은 올 2분기에 1990년대 초반 이후 최악인 제로 성장에 머물렀다.

영국은 미국에서 시작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영국의 주택가격은 지난해 11월부터 올 8월까지 10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며 경기 하락을 주도했다.

알리스테어 달링 영국 재무장관은 최근 “영국 경제가 아마도 60년 내 최악의 경기 하강에 직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국 중앙은행(BOE)은 4일 ECB와 마찬가지로 기준금리를 5%로 동결했다. 인플레이션이 정부의 목표치인 2%의 두 배를 넘으면서 금리 인하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의 통계기관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유로존 경제 성장률은 1분기 대비 ―0.2%로 1999년 유로화 도입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유로존 경제의 ‘기관차’로 불려온 독일의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0.5%가 감소해 2004년 3분기 이후 처음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2, 3위 경제규모인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2분기 성장률이 각각 ―0.3%였다. 프랑스의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2002년 이후 처음이다.

지난 10여 년간 견실한 성장세를 보여온 스페인도 전 분기 대비 성장률이 0.1%에 불과해 사실상 제로성장에 가까웠다. 스페인의 1분기 성장률은 2.7%였으며 작년에도 3.8%의 성장률을 기록했었다.

유럽 경제의 약화로 유로화 가치도 지난달 이후 달러화와 엔화에 대해 연일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유로당 1.6달러대를 넘보던 유로당 달러 환율이 거의 1.4달러까지 떨어졌다.

5일 유로-달러 환율은 9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유로-달러 환율은 이날 장중 지난해 10월 24일 이후 최저치인 유로당 1.4196달러까지 떨어졌다가 1.4231달러로 마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그동안 미국의 주택시장과 금융 불안을 주목했던 외환 거래자들이 이제는 유럽의 경기 침체에 눈을 돌리면서 달러화가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