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국무 55년만에 리비아 방문…라이스-카다피 ‘역사적 회담’

  • 입력 2008년 9월 8일 02시 55분


라이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카다피 “美는 친구도 적도 아니다”

세계 언론들이 ‘역사적’이란 수식어를 붙이기를 주저하지 않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와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의 5일(현지 시간) 회담은 다소 매끄럽지 않은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 트리폴리발(發)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라이스 장관 일행은 이날 저녁 한 호텔에서 회담장으로 출발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예정시간이 한 시간이 지나도 리비아 측에서 연락이 없자 라이스 장관은 “일단 출발하자”고 지시했다.

라이스 장관 일행이 도착한 회담장인 국가원수 관저는 22년 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미군의 폭격으로 카다피 원수의 수양딸이 숨졌던 곳.

카다피 원수는 라이스 장관을 “나의 친애하는 블랙 아프리칸 여성(my darling black African woman)”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오른쪽 가슴에 손을 대는 방식으로 인사를 했다.

이어 그는 라이스 장관을 리셉션장으로 안내했는데 취재진 등이 어지럽게 몰려 라이스 장관은 잠시 수행원들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라이스 장관은 카다피 원수에게 “내 수행원들은 어떻게 됐죠? 바로 내 뒤에 있었는데…”라고 묻기도 했다. 수행원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사소한 이런 일들을 두고 미국 언론과 외교전문가들은 ‘55년 만에 이뤄진 미 국무장관의 리비아 방문’이란 상징성 뒤에 남아 있는 양국 관계의 여전히 껄끄러운 분위기를 드러내는 에피소드로 받아들였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양국 관계 개선 전망에 매우 흥분해 있다”는 라이스 장관의 덕담과 함께 회담이 진행됐지만 불신이 사하라의 안개처럼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

회담 후 라이스 장관은 교류 확대 방안과 테러대책, 중동 평화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으며, 조만간 교육 문화 교류 협정도 체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라이스 장관은 이날 리비아의 인권 상황을 거론하면서 정치범 석방을 요구했지만 카다피 원수는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이스 장관은 기자들에게 “이번 방문이 양국 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신호는 아니며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카다피 원수는 지난주 초 TV연설에서 “리비아와 미국은 친구도, 적도 아니다”고 규정했다.

사실 양국 관계는 리비아가 2003년 12월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 폐기에 전격 합의했을 때 기대했던 만큼의 속도감 있는 진전을 이루지는 못해 왔다.

다만 세계 9위의 유전 보유국인 리비아의 석유사업에 진출하려는 미국 석유 자본들의 욕구가 앞으로 양국 관계 진전의 상당한 추동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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