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 속의 일본 100년전 스승들에게 길을 묻다

  • 입력 2008년 8월 23일 03시 12분


후쿠자와 유키치 등 이름 내건 주쿠 잇따라 들어서

두뇌집단에 석학 초청 강의… “위인 지혜로 난세 극복”

‘난세일수록 필요한 것은 인재다. 선인들에게서 지혜를 구하라.’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등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활약했던 위인들의 이름을 내건 ‘주쿠(塾·사숙)’들이 도쿄(東京)에 속속 생겨나고 있다. 대학생이나 사회인을 대상으로 한 이들 주쿠는 설립주체는 제각각이지만 취지는 비슷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세상을 이끌어갈 인재를 기르겠다는 것.

도쿄 롯폰기(六本木)에 있는 재단법인 국제문화회관은 1920년대 국제연맹 사무차장을 지낸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를 기리는 ‘니토베 주쿠’를 9월부터 연다.

주쿠의 원장 아카시 야스시(明石康) 전 유엔 사무차장은 “요즘 일본에서는 국제사회의 일선에서 활약하는 인물이 좀체 나오지 않고 있다”고 탄식하며 “100년 전을 풍미한 위인들이 지녔던 첨예한 문제의식과 위기감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주쿠에선 일본이 자랑하는 석학들이 직접 강의를 하며 영어 강의도 마련될 예정이다. 수강생으로는 국제단체에서 3년 이상 실무경험이 있는 40세 이하 15명을 서류심사와 면접으로 선발할 계획. 일부 강의는 일반인에게도 공개할 예정이다.

아카시 씨는 이와는 별도로 2002년부터 군마(群馬) 현에서 고교생을 대상으로 ‘아카시 주쿠’를 열어 왔다. “해외에 나가도 주눅 들지 않고 행동하는 일본인을 기르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게이오대는 창립 150주년을 기념해 ‘후쿠자와 유키치 기념 문명 주쿠’를 내년에 개교할 계획이다. 대학 창설자인 후쿠자와의 정신에 기초해 사회가 지향해야 할 점이나 인간 삶에 대해 폭넓게 배우는 자리다. 후쿠자와의 저서나 고전 읽기, 다도 등을 통해 일본의 문화나 역사를 배우는 등 ‘교양’에 치중할 예정이다. 정원은 학생과 사회인을 합쳐 50명.

주쿠 관계자는 “시대는 후쿠자와가 처음 주쿠를 열었을 당시와 유사하게 혼란스럽다. 어떤 진로를 택하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리더를 길러내고 싶다”고 말한다.

와세다대는 창립자 오쿠마 시게노부(大외重信)를 기리는 ‘오쿠마 주쿠’를 2002년부터 개설해 운영 중이다.

유명 저널리스트인 다와라 소이치로(田原總一郞)가 원장을 맡았으며 오쿠마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시민의 양성’을 지향한다.

매주 정·재계 요인을 강사로 초빙해 수업의 후반은 질의응답으로 이뤄진다. 학부생 200명이 정원이지만 갈수록 수강 희망자가 늘어 학기 초에 작문시험을 치러 수강생을 선발하고 있다. 와세다대는 이 밖에 소수 학생이 토론식으로 운영하는 ‘오쿠마 주쿠 연습’이나 대학원 과정의 ‘오쿠마 주쿠 리더십론’도 마련해놓고 있다.

주쿠 담당인 다나카 아이지(田中愛治) 정치경제학술원 교수는 “평화로운 시대에는 리더가 중요하지 않지만 지금은 난세다. 오늘날 우수한 리더가 없는 현실은 ‘인재 양성의 장’이어야 할 대학에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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