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곳곳 특정 이해집단 ‘후진국형 언론테러’

  • 입력 2008년 6월 27일 21시 04분


러시아 일간지 코메르산트 편집국에서 일하는 기자 A씨(본인의 요청으로 익명 처리)는 가스총을 휴대하고 다닌다.

그는 "지난해 3월 국방부를 출입하던 동료 이반 사프로노프 기자가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숨진 뒤 여러 기자들이 호신용 도구를 소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사프로노프 기자 암살은 코메르산트가 친(親) 크렘린계 금속재벌인 알리셰르 우스마노프 메탈로인베스트사 사장에게 팔린 뒤 6개월 후에 일어났다.

사프로노프 기자를 살해한 세력이 국가권력이 아니라 무기 판매상 같은 이익 집단이라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범행 배경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직후 이 회사의 한 여기자는 "독살 협박을 받았다"며 미국 대사관에 망명 신청을 냈다.

최근 러시아 언론인들은 "특정 이해 집단의 사주를 받은 언론인 대상 테러의 공포가 국가 기관에 의한 폭력보다 더 심각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러시아 뿐 아니라 각국에서 테러 조직에 의한 언론인 대상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서 최근 세계신문협회(WAN)도 이 문제에 각국이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것을 호소했다.

이 협회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달 초 스페인 바스크 지역에서 엘코레오(El Correo) 신문사 인쇄시설이 폭파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WAN은 성명을 내고 "민주주의에 대한 난폭하며 비겁한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엘코레오 신문은 바스크지역 분리 독립을 반대해왔으며, 인쇄시설 폭발은 폭력을 통해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는 테러주의자에 의해 자행됐다고 협회는 전했다.

이 협회 티모시 볼딩 사무총장은 "언론 자유에 대한 공격은 폭압적 정권에 의해서만 자행되지 않는다는 점을 일깨워준 사건"이라며 "언론 종사자들이 협박과 공격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국제 사회가 감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언론단체인 언론인보호위원회(CPJ)는 지난해 6월1일부터 1년간 전 세계에서 82명의 언론인들이 고국을 떠나 망명했다고 18일 발행한 보고서에서 밝혔다. 망명 이유의 대부분은 협박이었다. 폭행과 살해 협박이 51명, 투옥 협박이 11명이었다.

대부분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스리랑카 파키스탄 멕시코 중국 등 민주주의 후진국에서는 협박에 의해 언론인이 직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

스리랑카 시민 사티산 쿠마란(Satheesan Kumaaran) 씨는 올 1월 "지난해 5월 신문사 간부가 귀가 도중 갱단에 납치됐으나 당국은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스리랑카에서 언론인 테러 사건중 진상 규명이 된 것은 30년 동안 단 한 건도 없다"며 "일부 세력의 언론인에 대한 적대감이 극에 이르러 언론자유가 꺼져가고 있다"고 규탄했다.

WAN은 올 5월 세계 각국 언론에 대한 보고서를 내고 아프리카 남미 지역과 같은 민주주의 후진국에서 자행되는 언론 협박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특히 소말리아 짐바브웨 등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지역 군벌과 테러단체의 언론사 침입과 언론인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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