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마천루는 ‘동세서점’

  • 입력 2008년 6월 14일 03시 01분


현대판 바벨탑을 연상시키는 신흥 국가들의 초고층 건물들. 중국 중앙(CC)TV 신사옥 ① 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장식하는 에미리트 타워호텔 ②, 그리고 러시아의 크리스털 아일랜드 ③. 사진 출처 슈피겔
현대판 바벨탑을 연상시키는 신흥 국가들의 초고층 건물들. 중국 중앙(CC)TV 신사옥 ① 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장식하는 에미리트 타워호텔 ②, 그리고 러시아의 크리스털 아일랜드 ③. 사진 출처 슈피겔
자금 몰리는 중동-중국으로 중심이동

2010년엔 20위 중 美-유럽은 2개뿐

최신 유행의 마천루(摩天樓)와 초고층 빌딩들이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의 장관을 구경하려면 앞으로는 뉴욕이나 런던, 파리가 아니라 상하이나 두바이, 모스크바로 가야 할 듯하다.

최근 중동 산유국과 아시아 신흥 개발도상국들이 ‘마천루 경쟁’에 속속 뛰어드는 반면 경기불황과 금융위기 등으로 자금력이 달리는 미국과 서유럽 도시들은 이를 ‘질투 어린’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다고 독일 주간지 슈피겔이 보도했다.

슈피겔은 이 같은 경쟁구도를 ‘동서양 건축문명의 충돌’에 비유하면서 서구의 저명한 건축가들이 역설적으로 초고층의 주도권을 동양으로 옮기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국에서는 초고층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과 각종 규제에 지친 이들이 중동 산유국과 신흥 개도국에 와서는 예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자유를 누리면서 마음껏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

네덜란드 건축가 렘 쿨하스는 베이징(北京)에서 가장 높은 중국중앙(CC)TV 신사옥(높이 234m)을 거대한 개선문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영국의 유명 건축가 노먼 포스터 경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피라미드를 닮은 450m 높이의 마천루 ‘크리스털 아일랜드’ 건설을 추진 중이다.



▽쑥쑥 솟아나는 아시아권 마천루=후발 주자인 중국과 아랍 등 아시아권 국가들이 초고층 경쟁에 뛰어드는 것은 이들 나라에서 마천루가 성공 및 번영의 상징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초고층 빌딩 정보 전문사이트인 ‘스카이스크레이퍼페이지(www.skyscraperpage.com)에 따르면 현재 세계 20위 안에 드는 마천루 가운데 미국과 유럽 지역의 초고층은 시카고 시어스타워 등 5개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아랍 국가들과 중국 등 아시아지역이 차지하고 있다.

2년 뒤인 2010년에는 중국 러시아 등에 더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미국과 서유럽 지역 초고층은 20위 안에 단 2개만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대표 마천루 도시였던 뉴욕은 명함 한 장 내밀지 못하는 처지로 전락할 듯하다.

슈피겔은 “머지않아 카자흐스탄과 카타르 같은 아시아 국가들이 유럽이나 미국보다 스카이라인의 아름다움에서 우위에 서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기침체에 가로막힌 미국 유럽의 마천루=뉴욕 런던 파리 등도 스카이라인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오일머니 등으로 무장한 아시아 도시들이 워낙 빠르게 치고나가면서 상대적으로 느린 미국과 유럽 도시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 도시’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터진 미국발(發)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은 뒤로는 대출받기가 훨씬 어려워져 막대한 자금력이 필요한 초고층 건설 사업이 곳곳에서 암초에 부닥치고 있다고 슈피겔은 지적했다.

라스베이거스의 ‘코즈모폴리턴 리조트 카지노’ 사업은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인 사례다. 180m 높이의 마천루 2개동이 이미 올라갔으나 자금 부족으로 사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보도했다.

30억 달러를 들여 호텔 아파트 쇼핑몰을 복합 개발하는 로스앤젤레스의 ‘그랜드 에버뉴 프로젝트’ 역시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 공사가 수차례 지연됐다. 세계 최대 기관투자가인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기금은 조만간 이 프로젝트에서 손을 뗄 예정이다.

슈피겔은 미 워싱턴의 도시 연구기관을 인용해 “유럽지역의 상당수 도심 개발사업도 경제사정 탓에 더는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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