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의 ‘실용’ 주효… ‘오바마 대세론’ 일단 멈춤

  • 입력 2008년 3월 6일 03시 00분


여보, 힘내세요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3개 주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에게 패배한 4일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의 지지자 집회에서 연설을 한 뒤 부인 미셸 씨를 끌어안고 있다. 샌안토니오=EPA 연합뉴스
여보, 힘내세요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3개 주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에게 패배한 4일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의 지지자 집회에서 연설을 한 뒤 부인 미셸 씨를 끌어안고 있다. 샌안토니오=EPA 연합뉴스
■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장기전으로

벼랑 끝에 몰린 듯이 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4일 극적인 부활의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었던 모멘텀(동력)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이번 격전장 중 하나였던 오하이오 주는 경제현실이 너무도 절박해 구체적인 해법을 갈망하고 있었다.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주무기인 '희망' '변화'의 메시지만으로는 유권자의 마음을 얻기 힘들었던 것이다.

힐러리 의원은 구체적인 실업대책과 복지대책을 제시하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장지역의 근로자와 실업자들을 찾아 "막연한 변화와 희망이 아닌 해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워싱턴포스트의 표현에 따르면 '실용주의적 접근'이 주효한 것이다.

둘째, '이번이 아니면 끝이다'라는 배수진 전략이 먹혀들었다. 힐러리 의원 자신은 '패배 불가피론'이 확산될까 우려해 중도 사퇴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이 나서 "세컨드 슈퍼화요일에 지면 사퇴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여성, 특히 백인 여성층은 그의 중도 사퇴 가능성이 실제 눈앞에 다가오자 "앞으로 오랫동안 힐러리만 한 여성 대통령감을 갖지 못할 것"(다이앤 페인스타인 상원의원의 표현)이란 절박한 심정에 대거 힐러리 의원에게 몰렸다. 오하이오 출구조사 결과 힐러리는 백인 여성층에서 2배 차이로 오바마를 앞섰다.

힐러리 진영이 집중적으로 방영한, '새벽 3시 백악관에 걸려온 긴급 사태 전화를 누가 받기를 원하느냐'는 TV광고도 결과적으로 힐러리의 '경륜론'을 쟁점으로 부각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와 대조적으로 오바마 의원은 투표 직전 터져 나온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관련한 이중적 언행 의혹과 부동산 개발업자 안토인 레즈코의 스캔들 등 '2대 악재'에 시달렸다.

뉴욕타임스는 4일 "오바마 의원의 참모가 캐나다 정부에 '오바마 의원이 NAFTA 재협상 발언을 한 것은 선거용'이라는 뜻을 전달한 비망록이 있다"고 폭로했다.

문제의 인물은 오바마 의원의 수석 경제참모인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로 비망록은 시카고 주재 캐나다 영사관의 영사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의원 측은 "비망록에는 오바마 의원의 뜻은 물론 굴스비 교수의 발언 자체도 부정확하게 기록돼 있다"고 해명했지만 '오바마가 위선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일었다.

'오바마 대세론'이 확산되면서 언론들의 잣대가 더 '깐깐해진' 측면도 있다. 보수적 매체인 폭스뉴스는 "오바마에게 우호적이었던 언론들이 이제야 비판적 논조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논평했다.

힐러리 의원은 이날 승리로 대의원수 격차를 다소 줄이면서 4월 22일 펜실베이니아 예비선거까지 승부를 연장하며 대역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한 달가량 파죽지세로 이어진 오바마 의원의 11연승 행진을 저지하며 민주당 내에서 확산돼 온 '적전 분열 방지를 위한 중도사퇴론'을 잠재운 것도 의미가 있다. 캘리포니아 뉴욕 뉴저지 매사추세츠에 이어 텍사스, 오하이오까지 대형 주에서 대부분 승리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그러나 텍사스는 히스패닉 유권자가 흑인보다 훨씬 많은 곳이었고, 오하이오는 힐러리 핵심 지지층인 블루칼라 백인 노동자가 많은 지역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오바마 의원의 패배는 '숨고르기'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다.

오바마 의원은 여전히 대의원 확보 수에서 힐러리 의원을 80명 이상 앞서고 있다. 앞으로 남은 경선에서도 박빙의 승부가 펼쳐진다고 가정할 때 대의원수 선두가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자금과 조직 면에서도 오바마 의원이 앞서고 있다.

다만 힐러리 의원의 지지기반을 빠르게 잠식해 온 오바마 의원의 기세가 이번에 한풀 꺾인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변화'와 '희망'의 메시지만으로 11월 대선까지 가는 것은 무리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어떤 변화인지, 어떻게 변화를 이룰지 콘텐츠를 더 채우지 않으면 '반복되는 구호에 유권자들이 피로해 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

민주당 지도부는 공화당 후보가 확정된 상태에서 8월 전당대회까지 후보를 정하지 못하는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모습이다. 두 후보간의 상호 비판 뿐 아니라 승부의 열쇠를 쥐게 될 슈퍼대의원 포섭과정에서의 잡음, 플로리다와 미시건 재경선 주장 등 달갑지 않은 문제들이 계속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오스틴(텍사스주)=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 텍사스-오하이오 표 분석

히스패닉-65세이상 노년층

3명중 2명이 힐러리 지지

텍사스 주 프라이머리(예비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의원이 51%의 지지를 확보해 48% 지지에 그친 버락 오바마 의원을 누르고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히스패닉과 노년층의 압도적인 지지였다.

CNN방송이 4일 텍사스 주 유권자 204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출구조사에 따르면 전체 조사 대상자의 34%를 차지하는 히스패닉 유권자의 67%가 힐러리 의원을 지지했다. 반면 오바마 의원에게 투표한 유권자는 31%에 그쳤다.

44%를 차지한 백인 유권자 득표율에서도 힐러리 의원이 56% 대 43%로 오바마 의원을 앞섰다. 특히 슈퍼 화요일 이후 오바마 의원 지지로 돌아섰던 백인 남성 유권자들도 50% 대 47%로 힐러리 의원에게 표를 줬다.

65세 이상의 노년층 득표에서도 힐러리 의원이 67%를 차지해 30%의 오바마 의원을 두 배 이상 앞섰다.

반면 흑인 유권자의 경우 83%가 오바마 의원을 지지해 16%에 그친 힐러리 의원을 압도했다.

54% 대 44%로 힐러리 의원이 승리한 오하이오 주의 출구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1612명이 대답한 CNN 출구조사 결과 백인의 경우 64%가 힐러리 의원을, 34%가 오바마 의원을 지지했다. 반면 흑인은 87%가 오바마 의원에게, 13%가 힐러리 의원에게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 지지도에서도 65세 이상의 경우 힐러리 의원이 72%의 지지를 얻어 26%에 그친 오바마 의원을 압도했다.

오스틴(텍사스 주)=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 남은 경선 일정

내달 22일 펜실베이니아

대의원 188명 걸린 승부처

힐러리 클린턴 의원이 4일 미국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선전하면서 승부는 다시금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태로 접어들었다.

비교적 많은 대의원(188명)이 걸린 4월 22일 펜실베이니아 경선 결과가 나오면 윤곽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지만 속단은 어렵다. 승자독식 방식인 공화당과는 달리 민주당 경선은 득표 비율에 따라 대의원을 배분하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하지 않는 한 표 차이가 크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8월 25일부터 4일간 콜로라도 덴버에서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까지 가서야 비로소 민주당 대선후보가 확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 지도부는 이 같은 긍정적 효과보다 경선이 장기화되면서 당 내분과 갈등이 불거지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경선과 상관없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특별대의원에도 전에 없는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 지도부가 밀실정치 형태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만든 이 장치가 선거의 흐름을 뒤집는 결정을 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미국의 소리(VOA)방송은 5일 “특별대의원은 상황을 보아 판세 전개에 따라 지지 후보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 때문에도 펜실베이니아 경선은 두 사람의 각축장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CNN에 따르면 5일 현재 힐러리 의원이 238 대 194로 오바마 후보보다 특별대의원을 44명 더 많이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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