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불황 후유증 ‘잃어버린 민생’

  • 입력 2008년 1월 4일 03시 01분


의료비 삭감에 병원 진료축소… 응급환자 잇단 사망

대도시선 한겨울 집단식중독… ‘식품안전 신화’ 붕괴

일본 경제는 최근 회복세에 들어섰지만 서민 생활과 직결된 복지와 위생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병원의 진료 거부로 환자가 숨지는 사고와 식품 안전사고가 잇따라 선진국 일본의 민생이 후진국 수준으로 퇴보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구조 및 진료 거부로 거리에서 사망=2일 오사카(大阪)에서는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49세 남성이 응급구조대의 출동 거부로 1시간 뒤에 병원에 후송되는 바람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신고를 접수한 사고 현장 인근의 5개 구조대는 근무자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출동하지 않았다고 아사히신문 인터넷판이 3일 보도했다.

오사카에서는 지난해 12월 25일에도 89세 여성이 병원의 진료 거부로 구토 증세가 악화돼 사망한 바 있다. 이 여성은 처음에 의식이 있었지만 2시간 동안 30개 병원을 오가던 도중 숨졌다.

병원들은 가족의 간절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입원실과 당직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한결같이 진료를 거부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전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6일에는 효고(兵庫) 현에 사는 남성이 18개 병원을 전전하던 중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숨졌다. 산부인과가 부족한 나라(奈良) 현에서도 병원의 진료 거부로 임신부가 사망하거나 사산(死産)하는 사건이 이어졌다.

이 같은 비극은 일본 정부가 무리하게 의료비를 인하하는 바람에 병원 수익이 감소해 의사가 줄었기 때문. 근본적으론 고령화 대책과 의료복지 정책이 미흡한 데 따른 결과다.

정부의 지원 부족으로 ‘저임금 고노동’에 시달리는 사회복지 전문가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도 한때 복지국가를 표방했던 일본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사회복지 관련 종사자의 이직률은 20.2%로 산업계 전체 평균치(17.5%)를 웃돌았다.

▽식품 안전 붕괴… ‘잃어버린 10년’의 여파=‘깨끗하다’ ‘믿을 수 있다’는 이미지가 강했던 일본의 식품 안전도 심각한 상태이다. 지난해에는 식품의 유통기한이나 재료를 속인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올해의 한자’로 ‘僞(거짓 위)’가 선정되기도 했다.

유명 제과업체인 후지야는 지난해 12월 오래된 크리스마스 선물용 과자의 유통기한을 수정한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었다. 일부 선술집 체인업체들의 경우 고급 요리에 속하는 말고기 회를 최상품처럼 보이도록 육질에 지방을 인위적으로 주입하는 등 위조 수법도 갈수록 지능화되는 추세다.

심지어 병원에서는 전염병이 발생해 입원 환자가 사망하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해 12월 31일 나가노(長野) 시의 한 병원에서는 입원 환자 25명이 집단 식중독에 감염된 가운데 80대 여성 환자가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도쿄(東京) 요코하마(橫濱) 등 대도시의 학교와 식당에서는 한겨울에 집단 식중독이 잇따라 발생해 시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한신대 하종문(일본지역학과) 교수는 “1990년대 장기불황으로 인한 ‘잃어버린 10년’의 여파가 이제야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급성장하던 경제가 갑자기 악화돼 생활에 타격을 입자 사람들이 공동체 의식을 잃어버리고 이기주의로 돌아서 버린 결과라는 설명이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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