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학가 ‘열혈 보수파’ 늘고 있다

  • 입력 2007년 12월 2일 20시 46분


"이라크 전쟁 상황은 수렁 속이고,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우리는 졌습니다. 그래서 어깨에 힘이 빠졌냐고요?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느슨했던 마음을 조이면서 보수주의의 가치를 확산시키기 위해 더 열심히 뛰게 하는 자극이 됐습니다."

미국 공화당을 지지하는 대학생 모임 '컬리지 리퍼블리컨'(CR·College Republican) 전국위원회 소속인 타일러 르웰링 씨의 말이다. 그는 지난달 30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공화당의 인기가 바닥을 기어 사기가 떨어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르웰링 씨는 "일시적인 정책의 성패에 따른 지지도 하락으로 미국 젊은층의 흐름을 판단해선 안된다"며 "비록 전체적인 지지도는 떨어질지라도 건국의 아버지들이 내세운 '미국적 가치'가 21세기에 더 소중하고 가치있음을 확신하는 확고한 보수주의자는 더욱 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시 행정부의 실정(失政)으로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재집권 전망은 밝지 않다. 특히 젊은층에서 공화당은 민주당에 비해 절대적 열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젊은층에서 공화당 지지율 전체는 형편없이 줄어들지만 동시에 열성적인 지지자는 급속히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새벽3시족'(아침잠을 반납하고 뛸 정도로 열심이란 뜻)이라 불릴만큼 열성적인 젊은 보수주의자들이 늘고 있는 현상은 향후 미국의 앞날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리버럴 아성'에 도전하는 젊은 우파들= "저들 좌파들에겐 전쟁 마저 정쟁의 수단입니다."

올 10월 워싱턴 조지타운대의 한 강의실에서 열린 CR 지부의 모임. 신입생 대표 경선에 나선 학생들이 단상에서 열변을 토했다.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발언 간간이 민주당과 진보진영에 대해 강도 높은 비난이 섞인다.

CR의 한 간부는 "그동안 대학 캠퍼스에서는 반전, 환경, 인권 등을 주제로 한 진보파의 행사는 연중 끊이지 않는 반면 보수파들은 뭔가를 도모하길 꺼려왔다"며 "그러나 현재는 전국적으로 컬리지 리퍼블리컨 지부가 1800개 이상 결성돼 있고 27만 명의 대학생이 회원으로 활동중"이라고 말했다.

사실 전통적으로 미국 대학은 리버럴의 아성으로 여겨져 왔다. 한 조사에 따르면 스탠퍼드대 교수의 경우 민주당 대 공화당원 비율이 7.7명 대 1명, UC 버클리는 9.9명 대 1명으로 나타났다. 또 한 조사에선 미국 공립대학 교수 가운데 47.9%는 자신이 진보주의자라고 응답했고 6.2%는 극좌파를 자처했다. 중도파라는 응답은 31.8%뿐이었고 보수파라는 응답은 13.8에 그쳤다.

특히 부시 행정부 2기들어 민주당은 젊은층에서 지지세를 더욱 넓혔다. 최근 여론조사들을 보면 18~29세 유권자의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62%, 공화당 30%로 민주당이 압도적 우위다. 이는 전체 유권자에서 민주당이 12% 포인트 앞서는 것 보다 훨씬 큰 격차를 보이는 것. 지난해 11월 중간선거때 젊은층에서 민주당 우세가 20% 포인트였던데 비해서도 민주당 지지세가 더 확산된 것.

그러나 이런 추세가 무색하게 CR 회원은 늘고 있다. 지난 1년간 회원 8만1400명, 지부가 320곳이나 늘었으며 대부분은 회비를 내는 진성(眞性) 회원들이란게 CR 측 설명이다.

CR은 1892년에 만들어진 역사깊은 조직이지만 1999년까지만 해도 회원수가 5만 명을 겨우 넘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치참모로 유명했던 칼 로브 전 백악관 고문 등 많은 공화당 지도급 인사들이 이 조직 출신이다. 민주당 대권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도 웨슬리 대학 신입생 시절 CR 지부 대표를 지냈다.

▽무엇을 지향하나= 지난주 캘리포니아주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목장에서는 전국 110여 개 대학 360여 명의 CR 간부들이 모여 보수주의의 미래를 놓고 워크숍을 했다. 이들에게 레이건 전 대통령은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면모를 보인 지도자로 존경받는다.

"그는 세금을 낮췄고 낙태에 반대했고, 공산주의에 맞서 원칙을 지켰다."(휴스턴대 재학생 라헬 쿨리지 씨·워싱턴포스트 인터뷰)

한 학생은 CR에는 세 부류가 있다고 설명한다.

첫째는 조직이 제공하는 네트워크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고, 둘째는 경마처럼 정치활동의 역동성에 흥미를 느끼는 경우, 그리고 세 번째는 골수 이념적 확신자들이다.

주요 정치인들도 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쏟는다. 지난달 19일 펜실베이니아 대학 CR 지부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 초청강연회를 열었는데 1000명이 넘는 학생이 좌석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젊은 보수주의자들에게 현재의 공화당은 실망스럽다.

CR의 한 자원봉사자는 본보와 통화에서 "부시 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을 적극 지지하지만 이라크 점령후 정책은 엉망이었다"며 "부시 행정부가 '작은 정부'라는 보수주의의 가치를 저버리고 재정규모를 계속 늘린 점도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2008년 대선 주자중에도 제2의 레이건이 없다는게 이들의 고민이다. 여론조사 결과 35세 이하 공화당원 사이에선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37%, 존 매케인 상원의원 21%, 프레드 톰슨 13% 등의 지지율을 보이지만 변화가 심하다.

한 블로거는 "현재 후보들은 레이건의 면모를 한 조각씩 갖고 있지만 그 조각들을 모두 맞춰서 가진 정치인은 없다"고 개탄했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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