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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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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전투부대에 배속된 트레이시 씨의 임무는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현지 정세를 파악한 뒤 군사 전략을 세우는 데 조언하는 것이다. 그가 속한 팀의 이름은 전쟁터에서 다소 생소한 ‘인적분야팀(HTT·Human Terrain Team)’. 미 국방부가 무력만으로는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인류학자를 동원해 올봄부터 실험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현지 문화를 이해하고 민심을 얻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이를 두고 미국 학계에서는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회과학을 악용한다며 ‘용병 인류학’이라는 비난이 거세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이 7일 보도했다.
트레이시 씨 이야기는 HTT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트레이시 씨는 아프간 동부 파크티아 주의 어느 지역에 유독 남편을 여읜 여성이 많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아들을 급여 수준이 높은 게릴라군에 밀어 넣을 가능성도 높았다. 미군은 트레이시 씨의 조언에 따라 남편을 여읜 부인들을 위한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트레이시 씨는 아프간 동남쪽의 자드란 부족 마을에서 탈레반이 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자드란 부족 원로를 공개 참수해 부족을 분열시키려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트레이시 씨는 미군 부대에 자드란 부족 내 화합책을 마련하면 자드란을 ‘반탈레반’으로 끌어들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아프간 현지의 마틴 슈바이처 미군 대령은 “인류학자가 합류한 뒤 현지 주민들의 시각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치안 보건 교육 활동에도 치중한 덕분에 전투 작전이 60% 줄었다”고 전했다.
미 국방부는 최근 HTT 프로그램을 이라크와 아프간 26개 전투 여단으로 확대하기로 하고 4000만 달러(약 367억 원)의 예산을 증액했다.
그러나 버지니아 주 조지메이슨대의 휴 거스터슨 교수 등 11명의 인류학자는 동료 학자들에게 HTT 프로그램 참여 거부를 촉구하는 인터넷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거스터슨 교수 등은 청원서에서 “미군은 HTT 프로그램이 안전한 세계 건설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대량 학살을 수반하는 잔인한 전쟁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HTT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이를 ‘무장 사회사업(armed social work)’이라고 반박한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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