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의 '연인'이상의 남자

  • 입력 2007년 6월 4일 18시 42분


코멘트
평화로운 고향마을에서 쌓아온 남녀의 벽을 뛰어넘은 진정한 우정과 친밀감, 그러나 여자가 어느날 대통령 영부인이 되면서 우정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고, 상심한 남자는….

어느 영화나 드라마의 줄거리가 아니다. 2008년 미국 대선 레이스 민주당 선두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1993년 자살로 삶을 마감한 빈스 포스터 변호사의 관계가 미국에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1970년대 워싱턴포스트 기자시절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보도했던 칼 번스타인 씨가 8년여에 걸친 취재 끝에 5일 출간하는 '여성 지도자 : 힐러리 로담 클린턴의 삶'은 힐러리 의원과 포스터 변호사,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세 사람이 20여 년간 맺어온 우정과 절망, 갈등의 과정을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어릴 적 친구였던 빈스는 1976년 아칸소주의 로즈 로펌에서 갓 채용된 변호사 힐러리를 처음 만났다. 클린턴과 힐러리가 결혼한지 1년뒤였다. 빈스는 과묵하면서도 진지하고 배려심이 많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즉흥적이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빌 클린턴과는 판이한 성격이었던 것. 클린턴 전 대통령은 스스로 "난 태어날때부터 16살이고, 힐러리는 40대로 태어난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렇게 치면 빈스는 태어날 때부터 점잖은 중년인 것 같은 그런 사람이었다.

힐러리는 큰 키에 조용하면서도 깔끔한 매너, 속 깊은 빈스를 신뢰했고 빈스도 힐러리에게 동경에 가까운 우정을 보냈다. 휴식 시간에 직원들이 다들 테니스를 치러 가거나 영화를 보러 갈 때 빈스와 힐러리는 따로 남아 함께 산책을 하거나 와인을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로즈 로펌에서 힐러리, 빈스와 함께 3총사로 불릴만큼 가깝게 지냈던 웹 허벨 씨는 "70년대 중반이후 힐러리에게 빈스만큼 가까웠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 사람은 점심시간엔 함께 인근 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란제리 패션쇼를 구경하기도 했다. 그러면 힐러리는 "너희들 꼭 네안데르탈인들 같아"라며 웃으며 놀리곤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성적인 관계는 아니었을 것이란 게 주변사람들의 관측이다. 서로의 재능과 공통의 관심사를 즐기고 신뢰하는, 연인보다 더 친밀한 친구사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는 것.

하지만 빈스의 한 친구는 "그는 힐러리를 사랑했다. 만약 그들이 성적인 관계를 맺었다고 해도 그들은 둘 다 그럴 자격이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두 사람 다 배우자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는 것.

1993년 1월 힐러리는 남편을 따라 백악관으로 가면서 빈스를 백악관 법률 부보좌관으로 함께 데리고 갔다. 사실 빌 클린턴과 빈스는 친구이긴 했지만 서로에 대해서는 힐러리를 통해 상대를 아는 게 더 많을 정도였으니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클린턴의 취임 1주일후 대통령 법률보좌관으로 임명돼 백악관에 들어간 버니 누스바움 씨는 "가보니 빈스는 영부인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며 "빈스에게 '어려운 점이 뭐냐'고 묻자 '사람들이 내가 힐러리와 잤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낙천적 성격인 남편 클린턴과 달리 힐러리의 초기 백악관 생활은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힐러리는 특히 경호원들과 일정 담당 직원들이 자신의 사생활을 외부에 누설하고 사생활을 너무 간섭한다며 불편해 했다.

힐러리는 빈스를 비롯한 참모들에게 백악관 직원들을 교체하는 방안을 만들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참모들은 "백악관 입주 초기에 그런 조치를 취하면 오히려 더 구설수에 오른다"는 신중론을 내세웠고 빈스도 여기에 동의했다.

힐러리는 이 문제에 더욱 신경질적이 됐고 빈스에게도 아랫사람 대하듯 명령조로 말하는 경우가 생겼다. 한번은 빈스 등 아칸소 주 출신 참모들에게 "당신들은 너무 순진하고 사람만 좋다. 아칸소 출신답게"라고 까지 했다.

천성적으로 '정치적인 동물'이 되지 못하는 빈스는 워싱턴 생활을 너무 힘들어했다.

갈등의 정점은 힐러리가 맡은 건강보험 개혁을 위한 대규모 태스크 포스 자문위원 500명의 명단 공개 문제에서 터졌다. 힐러리는 사실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자신은 백악관 비서실장이나 법무장관, 교육장관 등을 맡길 희망했으나 참모들의 만류로 포기하고 건강보험 문제 태스크 포스 팀을 맡아 의욕을 불태우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의사단체 등은 태스크포스팀 명단을 공개하라고 소송을 냈고 힐러리는 빈스에게 "빈스, 해결해(Fix it, Vince)"라고 명령조로 소송 대응을 맡겼다. 하지만 법원은 "태스크 포스팀은 공개리에 모임을 해야한다"고 명령했다. 힐러리는 이래선 일을 할 수 없다고 절망했다.

힐러리는 더욱 신경질적이 되어갔고 결국 백악관의 일정 담당 직원 7명을 모두 해고해버렸다. 빈스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잘못 보좌해서) 힐러리를 망쳐 놓을까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백악관에 입주한지 정확히 6개월째인 그해 7월 20일 오후 1시 혼자서 사무실을 나간 빈스는 5시간후 워싱턴 교외 공원에서 권총으로 자살한 채 발견됐다.

그의 죽음을 놓고 온갖 음모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번스타인은 이 책에서 빈스가 워싱턴에서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를 자세히 소개했다. 그의 사무실엔 고향에서 들고 온 짐 박스가 아직 포장도 풀지 않은 채 놓여 있었고 벽엔 흔한 가족사진도 걸려 있지 않았다. 빈스가 백악관 생활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변사람들은 "힐러리가 영부인이 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그전 같은 친밀한 관계의 지속은 어려웠다. 빈스는 심부름꾼이고 변호사고 문제 해결사지만 더 이상 내밀한 대화의 상대는 아니었던 것이다"고 말했다.

빈스의 자살소식에 힐러리는 밤새 울면서 "그를 워싱턴에 오게 하는 게 아니었다"고 가슴아파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나중에 친구들에게 "빈스의 죽음은 힐러리를 파괴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피를 흘렸다"고 말했다. 빈스의 한 친구는 "힐러리가 그때의 충격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